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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이 책]상식, 혁명의 동력이자 포퓰리즘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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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이 책]상식, 혁명의 동력이자 포퓰리즘의 뿌리

동아일보입력 2011-09-03 03:00수정 2011-09-0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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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지음·정명진 옮김/424쪽·1만7000원·부글북스
앤서니 애슐리 쿠퍼가 1711년경에 그린 판화 ‘공통감각(sensus communis)’. 오늘날 ‘상식(common sense)’의 어원이 된 공통감각은 고대 로마시대에 나온 개념으로, 한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와 믿음을 일컫는다. 부글북스 제공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사건은 역사가의 사료로 선택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버지니아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역사학자가 상식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인 줄 알면서도 ‘상식’을 이 책의 주제로 잡았다. 역사에서 ‘상식’이 논란이 되는 시기는 바로 기존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상식’이 의심받고 도전받는 ‘역사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 정치에서 ‘상식’이라는 개념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과 사회의 진로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상식’이다. 모두가 한 표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제도는 바로 이 ‘상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국가의 운영에 관한 중요한 결정은 상당한 전문지식과 도덕적 소양을 갖춘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상식’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존립하고, 특히 상당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원제가 운영되는 것은 바로 이 ‘상식’에 근거한다.

대선·총선·보선 때마다 여야와 보수·진보를 적절히 안배하여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국민의 현명함을 보면, 잘난 척하는 지식인이나 정치가, 자본가의 ‘신중한’ 판단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인의 ‘상식’에 따라 한국사회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듯하다. 그럼에도 뉴타운정책, 수도 이전, 4대강, 신공항, 무상급식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의 포퓰리즘적 선동에 휘둘리는 국민을 보면 ‘상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상식’을 동원한 포퓰리즘이 어떻게 정치 지형을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 ‘상식의 역사’는 매우 간결하지만 원제목 ‘Common Sense: A Political History’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상식’에 대한 로젠펠드 교수의 접근은 개념사, 정치사, 철학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논의의 맥락에서 보면 개념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common sense’는 인간의 5가지 기본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인상들을 비교·통합하며 이성과는 별도로 감각 대상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별다른 이의 없이 전해진다. 아일랜드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건강한 사고의 증진을 위해) 형이상학을 영원히 추방하고 사람들이 상식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상식’의 의미는 이미 충분히 이해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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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왼쪽)
문제는 그 ‘상식’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상식’은 기본적으로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지배층에 대해 모든 사람이 이성과는 다른 차원의 건전한 판단력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것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18세기 중후반 스코틀랜드의 외진 도시 애버딘과 자유로운 문화의 망명지였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철학자만이 전점하던 판단력과 소수의 지배층이 독점하던 통치권을 흔들어 놓은 ‘상식’의 반란이 시작됐다. 머지않아 그 영향은 신대륙의 식민지 도시 필라델피아에 미쳤다. 그곳에서는 이 ‘상식’에 근거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행정관 대신 의회에 권한을 집중시키되 매년 선거를 통해 ‘상식’을 가진 인민들이 의원을 교체하게 하는 혁명적 정치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상식’이 늘 진보의 편은 아니다. 필라델피아를 거쳐 다시 대서양을 건너온 ‘상식’은 혁명의 도시 파리에서 복고적 사상과 결합한다. 프랑스혁명 발발 2, 3년 만에 전통적 가치들과 생활방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교회와 국왕, 마을의 공동체 정신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에의 호소가 힘을 얻었다. 물론 혁명을 주도한 자들도 ‘상식’에 호소하고 있었다. 이후 ‘상식’은 모든 정치적 논쟁에 동원됐다.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견해가 대중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고 이를 위해 정치가와 대중이 공유하는 ‘상식’이 가정되고 강조됐다. 진보든 보수든, 우파든 좌파든 적어도 대중의 힘을 필요로 하는 한 ‘상식’은 포기할 수 없는 무기가 됐다. 노예제도, 여성운동, 민족주의 등 정치사에서 벌어진 주요 논쟁마다 그 찬반 양측은 모두 ‘상식’에 의존해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다.

‘상식’은 죽음을 모르고 출몰하는 영혼과 같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대중의 ‘상식’에 일정한 거리를 두려 했던 칸트에게 호의적이지만 칸트의 후예들은 다시 정치로 나아갔다. 저자는 그중 해나 아렌트에게서 작은 희망을 찾는 듯하다. 아렌트에게서 ‘상식’은 사람들을 현실세계와 연결해 주고,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도록 해주며, 또한 공적 생활의 한계를 정해준다는 것이다. 미약하지만 이것은 미워도 버릴 수 없는 ‘상식’의 폐해를 막을 방법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이다.

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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