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만 명 인공호흡기 필요할 수도”…美 의료용품 얼마나 모자라기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5일 1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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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 거리 두기 끝나면 통제 여부 다시 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3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한 ‘15일간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치료가 질병을 더 악화시키게 할 순 없다.15일 후 우리가 갈 곳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경제적 타격을 이유로 통제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워싱턴=AP 뉴시스
“15일간 거리 두기 끝나면 통제 여부 다시 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3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한 ‘15일간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치료가 질병을 더 악화시키게 할 순 없다.15일 후 우리가 갈 곳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경제적 타격을 이유로 통제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시장은 미쳤다”며 불만을 토로한 데 이어 24일(현지 시간) 한국에 진단키트를 비롯한 의료장비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 내 부족 현황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의료기술 선진국이지만 지나치게 비싼 의료비 부담과 열악한 대중의료 서비스 등으로 갑자기 폭발하는 의료 수요를 감당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뉴욕 등지에서는 병원마다 의료진이 마스크 등 최소한의 보호장비조차 구할 수 없다며 아우성을 치는 상황. 대응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중증환자들에게 사용하는 인공호흡기 등 장비도 태부족이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23일 CNN방송에서 “우리는 3만 개의 인공호흡기가 필요한데 연방정부는 500개 수준의 지원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인공호흡기나 마스크 등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더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병원 관계자들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요와 공급의 차이는 수만 개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낸시 포스터 미국병원협회 부회장은 “어느 정도의 물량 공급이 충분한 수준인지는 지금 알기 어렵다”며 “인공호흡기를 확진가가 급증하는 지역 내 종합병원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옮기고 구형 모델도 다시 쓰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병원협회(AHA)에 따르면 미국의 병원들은 집중치료를 위한 인공호흡기 6만2000개,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인공호흡기는 10만 개 가량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확산 속도에 따라 90만 명 이상의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GE헬스케어와 필립스, 벡턴 딕킨슨, 메드토닉 등 의료용 중장비를 만드는 회사들은 구체적인 수량은 국가보안 사항이라는 이유로 언급하지 않은 채 “생산량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인공호흡기 생산 물량은 연간 총 5만 개 수준. 국방물자생산법(DPA)이 발동되면서 생산량은 더 늘어나겠지만 공급 숨통이 트일 때까지는 수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장비 생산에 필요한 부품들을 확보하는 것도 문제. 부품 공급망이 과부하가 걸린 상태여서 원활한 생산이 쉽지 않다. 일부 병원들은 2만5000달러~5만 달러에 이르는 고가의 새 장비를 사들일 여력이 없거나 새 장비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요구되는 교육 등에 대한 투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폭발적 증가 시점에 수요가 한시적이라는 점도 이들을 망설이게 하는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반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축소하는 데 급급하면서 연방정부가 주별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콘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때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국가비축물자(Strategic National StocKpile)용으로 1만3000개의 구형 인공호흡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주 정부에서 구체적인 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최근까지도 거의 풀지 않았다. 뒤늦게 오레온주와 워싱턴주가 여기서 일부 공급받았으나 두 주의 의료진은 모두 충분치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에 진단 키트를 요청한 것도 의료 물품과 장비 부족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외교소식통은 “글로벌 차원의 협조 차원이지 한국만 특정해서 요청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도 “한국의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검사와 방역 시스템 등 코로나19 대응이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미국 측의 평가가 함께 반영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폭스뉴스와 진행한 화상 타운홀 형식의 인터뷰에서는 지난 8일간 미국이 진행한 코로나19 검사가 한국보다 많았다는 점을 자랑하며 “우리 검사가 더 좋고 정교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정례브리핑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가 8일 동안 한국의 8주간 검사보다 더 많이 진행한 것은 엄청난 전환”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미국의 검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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