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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실종된 여성안심귀갓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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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실종된 여성안심귀갓길

사지원 기자 입력 2019-06-19 03:00수정 2019-06-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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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가 신고안내판-바닥 표시 없어
14일 저녁 본보 기자가 서울 종로구의 한 여성안심귀갓길을 걸어가며 설치물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곳 바닥에는 여성안심귀갓길 표시가 선명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전체 여성안심귀갓길 2875곳 중 바닥 표시가 잘돼 있는 곳은 561곳(19.5%)에 불과하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여기가 여성안심귀갓길이라고요?”

지난달 21일 오후 10시경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골목길. 여성안심귀갓길을 지나던 직장인 이모 씨(32·여)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 씨가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길에는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표시도, 112신고안내판도 없었다. 매일 이곳을 지난다는 이 씨는 “이렇게 방치할 거면 왜 여성안심귀갓길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서울 시내 여성안심귀갓길을 직접 확인해본 결과 대다수가 최소한의 시설물조차 없었다.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만 해놓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여성안심귀갓길은 경찰청이 2013년 내놓은 ‘밤길 여성 안심 귀가를 위한 종합대책’에 따라 지정됐다. 전국에는 지난해 9월 기준 254개 경찰서가 관리하는 2875개의 여성안심귀갓길이 있다. 경찰은 이곳에 여러 안전장치를 설치하도록 지방자치단체에 권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사시 누를 수 있는 비상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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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에서 안전장치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10일 오후 9시경 기자가 서울 종로구 누하동의 여성안심귀갓길을 걸어봤지만 비상벨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골목 중간에 있는 비상벨은 보안등 전신주에 가려져 있었다. 통상 비상벨은 방범용 폐쇄회로(CC)TV 기둥에 설치된다. 위급할 때 비상벨을 누르면 관제센터 요원과 즉각 통화하고, 경찰이 즉시 출동하기 위해서다.

비상벨을 찾기 어려우면 여성이 위급한 상황에 놓여도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다. 새벽예배를 보러 가기 위해 이 길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모 씨(66·여)는 “위험할 때 바로 누를 수 있는 비상벨조차 없는데, 이곳이 어떻게 안심귀갓길이냐”고 따져 물었다.

비상벨이 있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서울 용산구 이촌역 3-1번 출구 인근의 비상벨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비상벨을 누르자 관제센터로 연결됐지만 잡음이 너무 심해 직원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안 들린다”고 수차례 외친 뒤에야 “비상벨 위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하라”는 직원의 말을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위기 상황이라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셈이다.

여성안심귀갓길이 이처럼 방치된 것은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경찰과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바닥 표시나 비상벨 등을 어디에 얼마나 설치해야 한다는 구체적 규정이 없어 각 경찰서 범죄예방진단팀과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선 예산이 넉넉지 않은 데다 비상벨 등 시설물 설치 시 유지 관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성안심귀갓길 관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일선 경찰서의 설명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8일 경찰청에 여성안심귀갓길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실효성 있는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2875개 안심귀갓길 중 2167개(75.4%)의 길에 112신고안내판과 바닥표시가 모두 없었다. 비상벨이 없는 길도 1221개(42.5%)에 달했다.

방치된 여성안심귀갓길은 오히려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직장인 이모 씨(27·여)는 “여성안심귀갓길이라고 해서 가봤는데 일반 골목길보다 더 으슥했다”며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길이라고 정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길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안심하라고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설들을 확충해야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여성안심귀갓길#범죄 예방#여성 안심귀가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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