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정부, 남북대화 이유로 탈북단체 압박은 또다른 인권침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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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 ‘2018 인권 보고서’

미국 국무부가 13일(현지 시간) 발표한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는 살인이나 임의 구금, 정치범수용소 같은 극단적인 인권침해는 물론이고 여성 및 아동 인권, 노동권, 부패와 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인권 문제를 총망라한다.

국무부가 31쪽 분량의 한국 인권보고서에서 탈북민과 북한 인권 관련 단체의 압박 사실을 거론한 것은 ‘시민권의 존중’ 및 ‘국제 인권단체 및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정부의 태도’ 부문. 남북 대화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한 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엄중히 지적한 외교적 메시지로 평가된다.


○ “탈북 단체 압박도 인권침해” 이례적 지적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탈북민과 인권 관련 단체들의 증언과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면서 탈북민 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북한에 대한 비난을 줄이라는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고 적시했다. 정부가 2016년 법률로 규정한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더디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정부가 북한에 대한 비판을 꺼리는 것이 지연 요인”이라는 탈북 단체들의 발언을 함께 실었다. ‘언론 및 표현의 자유’ 부문에서는 탈북민 출신 기자가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 고위급회담 당시 정부로부터 취재를 제한당한 사실도 거론됐다. 한국 정부가 2016년 9월 외교부에 신설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자리가 1년 넘도록 공석인 점도 지적했다.

이런 지적들은 2017년 인권보고서에는 없던 내용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 둔 상황에서 이례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목적이 기본적인 인권침해나 억압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탈북지원단체 관계자는 “통일부의 민간단체 지원 예산이 반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통일부 지원이라는 것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받고 있다”며 관련 단체가 위축된 사실을 전했다.

한편 보고서는 ‘차별, 사회적 학대, 인신매매’ 항목 중 ‘여성’ 부문에서 미투 운동의 전개 과정에 대한 기술과 함께 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사건을 언급했다. ‘부패’ 부문에서는 뇌물수수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 결과를 실었다.


○ 北에는 ‘지독한 인권침해’ 표현 빼며 수위 조절

북한 보고서는 열악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와 정치적 살인, 구금, 여성 인신매매 등 유엔 인권보고서 등에서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인권 실태를 재차 비판했다. 2014년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99.97% 참여율과 100% 지지율을 보인 것도 선거 및 정치자유가 침해된 사례로 다뤄졌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책임을 강조하는 직접적인 평가는 하지 않았다. 2017 인권보고서에서 “북한 주민들이 정부의 지독한(egregious) 인권침해에 직면했다”며 정권의 책임을 강조했던 표현도 뺐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의 추가 대화의 문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북한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권 문제의 표현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이클 코잭 국무부 인권 담당 대사는 이날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보고서에 담아야 하는 내용이 많아 문구가 매년 조금씩 다르다”면서도 “북한이 행한 여러 일에 북한은 지독하다는 것이 함축적으로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코잭 대사는 북-미 대화 이후 북한 인권이 개선됐느냐는 질문에는 “그에 대한 어떠한 진전도 보지 못했다”며 “북한은 여전히 세계에서 인권 상황이 최악인 나라 중 하나이며, 북한 정권이 행동을 바꾸도록 어떻게 설득할지가 앞으로 우리가 기울일 노력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한국정부#남북대화#탈북#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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