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거사 충돌]한국인 밝히자 노골적 적대감 드러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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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야스쿠니신사 르포

일본의 ‘종전(패전)기념일’인 15일.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구단시타(九段下)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주위는 초고층 빌딩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내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제국주의 시대의 옛 일본군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일장기(히노마루)가 눈에 띄었다.

오전 6시 문이 열리자 후쿠시마(福島) 나가노(長野) 야마가타(山形) 등 지방에서 버스를 전세 내 올라온 참배객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2차대전 A급 전범 14명과 전몰 군인 등 246만6000여 명의 위패가 있어 전국에서 참배하러 온다. 이들은 배전(K殿·참배를 위해 세운 건물)으로 곧바로 가 세 번 절한 뒤 신사를 나섰다.

참배객 수는 예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반한(反韓) 감정은 높아졌다. 이들은 일본 국가 우월주의를 숨기지 않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발언에 항의하며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신사를 찾는 이들 가운데 극우 또는 우익 인사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전 9시경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전국 지방의원의 모임’ 회원 20여 명이 줄지어 신사로 들어섰다. 이들은 죽음으로 상관에게 충성한다는 내용의 군가 ‘우미유카바(海行かば)’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참배객중 중 한 명이 “아리가토(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오전 10시경 해군 복장을 한 예비역 군인 20여 명이 일장기를 들고 나타났다. 참배객 중에서도 일장기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독립비행 제71 중대 전우회’라는 깃발 옆에 가미카제(神風) 자살특공대의 복장을 한 남성도 눈에 띄었다.

정오에 사이렌이 울리자 시끌하던 신사는 일순간에 정적에 빠졌다. 참배객들은 묵념을 올렸다. 곧이어 일왕의 메시지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세계평화와 우리나라(일본)가 더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천황(일왕) 폐하 만세” 소리가 들렸다.

신사 주변에서는 예년과 달리 한국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 40대 남성은 지하철 구단시타 역에서 신사로 가는 인도에서 ‘독도 탈환!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나오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역사상 최대의 거짓말’이라는 피켓도 보였다.

사람들에게 한국 기자라며 말을 붙이면 대부분 냉정하게 돌아서거나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30대 초반 남성은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다. 일본이 싫으면 절대 일본에 오지 마라. 일본에 있는 한국인도 모두 일본을 떠나라”며 흥분했다.

한국을 서른 번 이상 방문했다는 70대 노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천황’을 언급했다”며 “그 사실만으로 일본인은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는 일왕이 여전히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뿌리박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야스쿠니신사 참배#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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