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2부]<4>북한, 한국사회 갈등의 도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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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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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든, 회초리든 평화·통일 목표는 같은데…
■ 남남갈등 극복을 위한 8가지 제언

《북한. 한국사회에서 분열과 갈등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다. 좌우 할 것 없이 북한 문제만 나오면 단단한 프레임(틀)에 갇힌다. 천안함 폭침만 해도 유엔안보리 결의에서 ‘북한의 책임’이 적시되지 않은 것은 증거 부족 때문이 아니라 강대국 간 국제정치적 이해 조정의 결과임을 뻔히 알면서도 좌는 “봐라, 한국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우도 툭하면 “북한 가서 살라”는 등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며 상대를 사갈시한다. 진보는 보수를 ‘반통일 세력’으로, 보수는 진보를 ‘친북주의자’ 또는 ‘나이브하다(철없다)’고 몰아붙인다. 사회통합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양쪽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약수를 찾고 있다. 다른 분야에선 어느 정도 접점이 보이는데… 북한 문제만큼은 평행선이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대북정책이 필요한가.’ 특별취재팀은 북한 전문가 집단에 해법을 물었다. 이들은 “특효약은 없다. 하지만 북한발(發) 남남 갈등을 극복하고 공존의 영역을 넓혀 나갈 지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이들의 조언과 취재팀 내부 논의를 바탕으로 8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신석호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1] 北 권력이양, 변화의 시작으로 봐야


‘Dear Leader is not immortal.’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쓴 표현으로 ‘위대한 지도자도 언젠가 죽는다’는 뜻이다. 뻔한 얘기를 왜 했을까. 리더십 교체는 필연적으로 엘리트층과 정책에서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 이후 3남 김정은으로 권력 이양을 진행하고 있다. 일각에선 9월 열리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보수도 진보도 진행 중인 북한의 권력 이양이 정책 변화를 수반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며 “북한의 3대 세습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지만 이것이 북한 체제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는 기대는 걸어본다”고 말했다. 그는 “차세대 리더십을 계기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적인 인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 北변화 이끌 ‘전략’의 다양성 인정해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은 북한의 변화(개혁·개방)와 평화통일이라는 같은 목적을 표방했다. 수단이 다를 뿐이다. 전자는 먼저 북한을 보듬고 선물도 줘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후자는 인센티브와 함께 ‘회초리’도 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대화와 교류협력에 집착해 수단을 목적인 양 혼동하고, 여기에 보수진영이 대응하는 과정에 ‘보수진영+한나라당=회초리, 진보진영+민주당 정부=선물’이라는 프레임이 고착됐다. 그 결과 두 진영 모두 집권 시 대북정책에 관한 운신의 폭을 좁히게 됐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공존, 통일에 필요하다면 북한에 선물을 줄 수도, 회초리를 들 수도 있어야 한다”며 “어떤 이념을 가진 정부든 다양하고도 실용적인 수단을 활용하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만간 북한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대북정책 입안 및 실행자는 이념과 논리에 충실한 ‘사상가’보다는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간교함을 가진 ‘전략가’라는 지적이 많다.
[3] ‘큰그림’ 욕심말고 한걸음씩 나아가자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5년 이내에 ‘새로운 북한’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며 ‘큰 그림’을 그렸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은 우리 의도와는 반대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 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햇볕정책 활용전략’에 이용당한 채 좌초했다. 현 정부 역시 ‘비핵·개방3000’과 ‘그랜드바겐’ 정책을 내걸었지만 천안함 폭침을 막지 못했다.

‘작고 실현 가능한’ 문제부터 해결한 과거 서독의 지혜를 배우면 어떨까. 서독은 1972년 동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한 이후 동독의 국제법적 승인 문제 등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미해결 과제로 분류해 제쳐둠으로써 갈등과 분열을 최소화했다.

그 대신 서독 지도자들은 동서독 주민의 통행, 경제사회 교류협력 등 쉬운 문제들에 집중하면서 미해결 과제의 수를 조금씩 줄여 갔다. 초기 브란트와 아데나워 서독 총리의 미해결 과제 보따리는 컸지만 콜 총리는 작은 보따리를 물려받았고, 국제정치적으로 탈냉전 상황이 조성되자 독일은 생각하지도 않은 시점에 통일이라는 거대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4] ‘북한 리스크’ 앞에 우리는 공동운명체


북한을 ‘리스크(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남한 내 보수와 진보 모두가 북한발 불확실성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공동운명체라고 인식하는 것도 공존을 위한 지혜다.

올해 3월 26일 꽃다운 나이의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천안함 폭침은 군사적 위험의 현실화였다. 이 밖에도 북한이 남한에 주는 정치, 경제, 사회, 국제정치적 위험은 굳이 사례를 들 필요조차 없을 만큼 분명하고 현저하다.

북한을 위험으로 인식하면 관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중단하는 대신 체제 붕괴를 포함한 다양한 북한 리스크를 미리 파악하고 어떻게 적절히 관리 통제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것인지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5] 敬而遠之… 北 인정하되 편드는건 금물

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국제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주민들의 기본 인권마저 짓밟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국제무대에서 주권을 인정받고 있고, 한반도 북쪽 절반을 통치하는 ‘현실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는 자체 교정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급적 거리를 두고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의 제안을 기준으로 보면 북한을 따르고 편드는 소수 ‘종북(從北)주의자’들은 물론이고, 북한이 하나의 국가임을 부정하는 강경 보수진영도 그리 전략적이지 못하다. 북한을 대화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무조건 차단하는 것 모두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다. 대화에 응하되 큰 기대를 걸 필요는 없다. 경이원지(敬而遠之), 즉 인정은 하지만 가까이 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6] 실리 생각하는 ‘실용적 민족주의’ 절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주변국을 설득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같은 민족끼리 함께 살겠다’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며 “서구에선 낡은 것으로 간주되는 민족주의를 지금의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도록 진화된 철학과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민족주의는 남남 공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쪽은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를 그대로 따라 외치고, 다른 한쪽은 “마주하기도 싫다. 차라리 남한만 따로 살자”라고 주장하는 상태에서는 통일은커녕 남남 공존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을 ‘같은 말을 쓰기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다른 나라’쯤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통일이 가져올 실리를 강조하는 ‘실용 민족주의’가 필요하다. 서 원장은 “통일이 단기적으로는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겠지만 △통일 과정에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분단에 따른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한국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전환할 수 있으며 △통일된 한반도가 세계무대에서 훨씬 많은 기회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실용적 비전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7] ‘있는 그대로의 북한’부터 가르쳐야

그동안 진보진영은 젊은이들에게 ‘한민족 북한’의 좋은 면과 불쌍한 면을, 보수진영은 ‘불법집단 북한’의 부정적인 면과 위협을 각각 부각해 왔다. 남남 공존이 가능하려면 북한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가르치는 통일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교육 내용도 북한의 실상과 통일의 필요성 수준에서 나아가 분단과 남북한 내부정치, 분단과 주변국 국제정치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은 “권력을 핵심으로 하는 현실주의 정치학과 국익을 최고가치로 하는 국제정치학의 언어로 분단-통일 문제를 논의해야 실용적인 대안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현실주의 정치학은 북한 문제가 왜 ‘고차 방정식’인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접근으로 고차 방정식을 풀 수 있어야 올바른 답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8] 편갈린 전문가들 ‘억지논리 만들기’ 그만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10년 동안 좌우로 갈려 싸운 북한 전문가들 역시 남남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학자들은 특정 정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연구프로젝트 수주 등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내 편’ 논리를 강화했다. 심한 경우 정권교체에 따라 논리가 바뀌기도 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전문가란 자신이 공부해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객관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적 이해를 공론에 반영하는 순간 전문가 자격을 잃고 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는 전문가를 선택적으로 중용하고, 반대 의견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온 관행도 고쳐야 한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전문가로 풀을 짜고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해도 북한 문제라는 고차 방정식을 풀 수 있을지 불투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도움말 주신 분 (가나다순)=김연수 국방대 교수·서재진 통일연구원장·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조동호 이화여대 교수·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 그리고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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