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교육 파행, 대입제도 탓으로 돌릴 일 아니다

  • 입력 2009년 4월 29일 02시 59분


내신 위주의 대학입시를 대학에 강요하다시피 했던 노무현 정부 때 연간 사교육비 규모가 2003년 13조 원에서 2007년 20조 원으로 급증했다. 입시에서 내신 비중을 높이면 학생들이 학교수업에 집중하고 그만큼 사교육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으나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었다. 정부가 1997년 본고사를 폐지한 후 등장한 논술시험도 사교육비 지출을 크게 증가시켰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직후 실시되는 논술시험 준비는 시간이 촉박해 학부모에게 목돈 부담을 안겼다. 정부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구실로 입시 제도에 개입하면 그 규제를 피하기 위한 더 큰 사교육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이명박 정부가 대입제도에 규제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어제 전국 대학총장 14명을 청와대로 불러 “대학입시 제도가 잘 확립되어야 초중고교 교육이 정상화된다”며 ‘선(先) 대학입시제도 확립, 후(後) 초중고교 정상화’를 강조했다. 교육 문제를 파생시키는 근원이 입시제도에 있다고 보는 듯한 말이다.

이에 앞서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사교육과의 전쟁’을 예고하며 외국어고 입시에 대한 규제 방침을 공개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대입 본고사가 부활하면 공교육이 완전히 망할 것 같다”며 일부 대학의 본고사 재도입 검토를 비판했다. 정부 측의 잇따른 발언으로 미루어 다음 달 중순 발표되는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강도 높은 입시 규제가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 자율을 강조하던 정부가 대학총장들을 청와대에 소집해 입시 제도를 탓한 것은 구태의 답습 같다. 입시 규제만으로는 결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없다. 입시에 모든 책임을 미루고 나면 ‘공교육 강화’라는 교육정책의 핵심 목표가 흐려질 수도 있다.

정부 개입은 대학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방식을 다양화하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늘리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대학들은 자율 속에서 공정하게 신입생을 선발하되 입시가 초중등 교육에 미치는 영향까지 감안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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