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내가 죽더라도 민주당 살려야”

  • 입력 2009년 4월 7일 02시 54분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과 박지원 문희상 의원(오른쪽부터) 등 중진들이 6일 오전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공천 배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과 박지원 문희상 의원(오른쪽부터) 등 중진들이 6일 오전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공천 배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동영 공천배제 충돌

정동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하나”

공천 지지 의원들 반발… 오늘 의총소집 요구

무소속 출마후 당선땐 정대표 정치적 치명상

민주당 지도부가 6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4·29 전주 덕진 국회의원 재선거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확정함에 따라 정세균 대표와 정 전 장관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 전 장관은 당장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태세여서 민주당은 불과 1년여 전 자당의 대선후보였던 사람의 낙선 운동을 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최고위, 만장일치로 공천 배제 확정=최고위원들은 이날 만장일치로 정 전 장관의 공천 배제를 확정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간을 두고 결정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5일 지도부와 정 전 장관과의 회동 불발 과정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주에 머물며 ‘공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정 전 장관이 지도부의 회동 제의를 계속 거부하자 정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 박병석 정책위의장 등이 약속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내려갔다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때문에 성과 없이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던 것.

이런 탓에 6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그동안 ‘공천 불가피론’을 폈던 일부 최고위원까지 “지도부의 권위를 고려해서라도 공천을 배제하는 수밖엔 길이 없다”고 돌아섰다. 한 최고위원은 “대선주자까지 지낸 사람이 호남 공천 사수를 위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민주당 내 영남 출신 인사들은 다 죽으라는 얘기”라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표, “나도 죽을 수 있다”=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결정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의 가장 큰 지도자인 정 전 장관을 배제하는 기막힌 상황이 됐다”며 “이번 결정으로 인해 정세균이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전문가가 ‘정 전 장관을 공천하면 정세균도 죽고 민주당도 죽지만, 공천을 하지 않으면 정세균만 죽고 민주당은 산다’고 했다”며 “당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다는 각오이며, 마음을 다 버렸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정 대표는 정치 인생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됐다. 정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고 승부처인 인천 부평을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패배할 경우 정 대표는 설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8일 전략공천 지역인 전주 덕진과 인천 부평을 후보자를 결정해 9일 당무위원회의 인준을 받겠다는 복안이지만 정 전 장관에 맞설 대항마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 대표는 유재만 변호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을 접촉했지만 영입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장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정 전 장관은 이날 공천 배제 소식을 듣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불교 경전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며 무소속 출마를 강력히 시사했다. 정 전 장관은 또 “정동영을 죽여야 민주당이 사느냐”고 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공직선거법상 후보 등록(14, 15일)이 시작되면 탈당을 할 수 없는 만큼 정 전 장관은 며칠 더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탈당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진 박상천 문희상 이석현 의원 등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유감 성명을 냈다. 김 의원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어수선한 사이에 공천 배제를 결정할 수 있느냐”고 지도부를 비판했다. 정 전 장관의 공천을 요구했던 최규식 박영선 이종걸 의원 등 15명도 성명을 내고 “4·29 선거를 ‘민주당 대 정동영’의 대결로 만들어 스스로 무너지는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7일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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