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건축, 서울에서 길을 잃다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 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김성홍 지음/368쪽·1만8000원·현암사

건축학을 전공한 저자는 “건축이 배우라면 도시는 배우가 서는 무대”라고 정의한다. 배우의 좋은 연기가 무대를 빛내고, 적절하게 설계된 무대가 배우의 연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처럼 도시와 건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저자는 도시와 건축의 어울림이 좋은 곳으로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꼽았다. 피렌체의 한가운데는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돔이 우아한 성당은 그 자체로도 멋있지만 성당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성당을 에워싼 광장과 붉은 기와집의 군집(群集)이다. 저자는 “팔라초라고 불리는 주택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하나하나는 나름대로의 비례와 장식이 있다”면서 “피렌체의 매력은 성당을 중심으로 집합적 질서를 지키면서도 건축 각각의 개별성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 북촌(서울 종로구)이다. 저자는 “북촌의 매력 역시 건축물과 도시가 공유하는 집합적 질서”라면서 “한국 전통 건축의 진면목은 개별 건축보다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집합성에 있다”고 설명한다.

북촌과 피렌체에서 보듯 도시는 건축물을 단순히 모아놓은 모둠이 아니다. 고대 건축 이론가 비트루비우스는 “집의 복도는 도시의 길이고, 도시의 광장은 집의 방”이라고 했다. 르네상스의 알베르티는 “도시는 큰 집이고, 집은 작은 도시”라고 했다.

도시 경관과 건축 형태를 동시에 계획하고 규제한 사례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리의 행정장관 오스만은 1853년 도시 개조에 나서 방사형 도로와 기념비적 구조물을 짓고 기존 도로의 네 배에 이르는 대로를 만들었다. 도로 폭도 법으로 규제하고 경사 지붕의 각도는 45도로 제한했다. 파리 개조 계획은 이후 유럽의 도시 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산업화와 기술의 발달이 건축에 어떤 변화를 끼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19세기 철근 콘크리트의 발명은 건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고층 건물이 많아졌고 종교 건물 위주의 건축이 감옥, 극장, 백화점 등으로 확산됐다. 새로운 건축물의 출현에는 인문학적 조명이 이뤄졌다. 에밀 졸라는 화려한 백화점을 두고 상업 문화의 충격을 묘사했고 발터 베냐민은 상점가를 배회하는 19세기 도시민의 일상을 그렸다.

저자는 더 나아가 동서양의 옛 건물들을 놓고 각각 공간이 어떻게 배치됐으며 어떤 형태로 만들어졌는지를 도면과 곁들여 설명한다. 충남 예산군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고택을 놓고 한국의 옛집이 어떻게 건축의 이상적인 유형을 현실화했는지 살피고, 서양의 신전 판테온과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이동식 주택 게르 사이의 공통점을 따졌다.

서울을 다룬 장에서 저자는 간판 문제를 가장 먼저 꺼내며 “한국은 간판 천국”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국토 계획법과 건축법이 주거 지역에 근린 생활시설을 허용한 대목에 주목했다. 유럽의 도시들은 지구 지역제에 따라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을 분리해 왔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큰길에는 각종 상업 공간이 집적된 독특한 복합 건축물이 생겨났다. 도로변에는 온갖 종류의 상업 공간이 몰려 있고 안쪽 길은 낮은 건물이나 주택이 차지하는 특이한 도시 공간 구조도 이런 현상을 두드러지게 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얼까. 그는 “도시를 가르는 도로, 거대 건축과 소형 건축, 상업 건축과 아파트의 양극 사이에 있는 중간지대에 기념비적 건축물을 짓는 것”을 권한다. 또 몇 개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짓는 것보다 도시 전역에 작은 건축물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좋은 건축은 도시에 작은 파장을 형성해 나가는 진앙이다. 이들이 연결망을 형성할 때 도시 문화는 더욱 풍성해진다. 건축은 도시 문화를 잇는 전략적 하부 마딧점이 되고 이 점들의 연결망이 조밀할수록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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