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집 잘 짓는 건설회사의 수난

  • 입력 2009년 3월 30일 02시 59분


‘굿모닝 힐’이란 아파트 브랜드로 유명한 동문건설 경재용 회장은 최근 충남 아산의 골프장과 정보기술(IT) 자회사 지분을 매각한 474억 원의 사재를 회사 정상화 자금으로 내놓았다. 25년간 키워온 회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이 되자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워크아웃의 전제조건이 해당 기업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 회장의 사재출연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사재출연의 진의를 놓고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기업의 회생을 100%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거액을 내놓는 것은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결단이다.

동문건설은 아파트 잘 짓기로 소문난 회사다. 대우 삼성 현대 GS 대림 같은 메이저 업체들이 서울 아파트 시장을 휘젓자 그 틈새를 공략한다는 발상으로 경기 고양시와 파주시, 수원시 등 주로 서울 외곽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공급해 왔다. 품질에 비해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라는 평판이 핵심 마케팅 포인트였다.

아파트 건설에 특화했다가 부동산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업체가 동문건설만은 아니다. 동일토건(동일하이빌)과 월드건설(메르디앙)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분양의 덫에 걸려 고전하고 있다. 세 회사 모두 자수성가형 오너가 열정으로 일군 회사다.

동일은 아파트 단지의 지상을 공원처럼 꾸며 차가 없는 아파트를 만들고 주민 공용 헬스장을 설치하는 등 새로운 개념의 공동주택 문화를 시도했다. 월드건설은 ‘메르디앙 아파트 평면은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내부설계와 인테리어에 많은 투자를 했다. 세 회사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다른 사업에 진출하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아파트 분양으로 번 돈을 다시 아파트 지을 땅을 사는 데 썼다. 성냥갑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듣던 한국의 아파트 수준이 높아진 데는 이런 주택건설 전문 중견업체들의 공이 컸다.

채권단의 신용위험평가에서 B등급을 받아 워크아웃을 면한 동일은 최근 본사를 서울에서 천안으로 옮겼다. 고재일 회장은 지난해 말 에쿠스 승용차를 팔았고 출퇴근하거나 거래처를 다닐 때 버스 전철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월드건설은 사이판월드리조트를 매물로 내놓았고 사옥 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는 짓기만 하면 팔린다는 ‘분양 불패(不敗)’의 신화에 도취돼 수요 분석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집을 지어댄 건설업계 공동의 책임이다. 분양가를 터무니없이 부풀려 시장을 왜곡한 잘못도 결코 가볍지 않다. 자금난에 빠진 건설업체들은 아파트 분양과 건설 공사를 진행하면서 다음 사업을 벌이기 위해 땅을 사놓았다가 미분양으로 자금 흐름이 막히는 바람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똑같이 아파트로 돈을 벌었어도 현금 회전이 잘되는 골프장을 짓거나 오너가 본업에서 손을 떼고 적당히 소일한 회사가 졸지에 우량 건설업체 취급을 받고 있다.

옥석(玉石) 가리기는 채권단이 구조조정 대상을 정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회생하려는 의지와 진정성이 있다면 주거래은행과 소비자가 이들의 재기 노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줘야 한다. 어렵게 쌓아온 전문업체들의 공력을 쉽게 포기하면 그 후유증은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주택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박원재 경제부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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