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올림픽” 쫓겨나는 베이징 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7월 3일 03시 00분



■ 올림픽 앞둔 베이징 ‘도시 정화의 그늘’
《“올림픽 열리니 서민만 힘겹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헤이처(黑車·불법 자가용 택시)’를 모는 천모(46) 씨는 요즘 생계 걱정에 잠이 안 온다. 올림픽을 앞두고 경찰의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리면 1만∼2만 위안(약 150만∼300만 원)의 벌금을 물고 5∼10일의 구류까지 살아야 한다. 천 씨는 “4개월 전 11만7000위안(약 1790만 원)을 주고 새 차까지 마련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림픽을 한 달여 앞두고 베이징 시가 각종 규제와 단속을 대폭 강화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대박’을 꿈꾼 호텔이나 상점들도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 ‘쪽박’을 차야 할 처지가 됐다.》
○ 불법 생계수단 “꼼짝 마라”
베이징의 독특한 교통수단인 ‘싼룬처(三輪車·무동력 자전거 택시 또는 오토바이 택시)’는 최근 경찰의 단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택시를 타기엔 가까운 1km 안팎의 거리를 3∼5위안(약 450∼750원)에 연결하는 싼룬처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애용했지만 이제는 걷거나 기본요금이 10위안(약 1500원)인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주로 육교 밑에서 영업하던 자전거포와 구두수리점도 모두 철거됐다. 하루 30∼50위안을 벌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경찰의 단속은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다.
차오양(朝陽) 구 왕징(望京)에서 구두 수리로 생계를 유지해 온 왕모(50·여) 씨는 “하루 벌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데 올림픽 때문에 이것도 어렵게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길거리의 세차공과 노점상도 경찰의 단속으로 생계수단을 잃었다. 5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베이징의 거지들도 최근 모두 고향으로 강제 이송됐다.

○ 갑작스러운 지하 거주 금지 ‘날벼락’
아파트 지하실에 거주하는 장모(25·여) 씨는 지난달 초 집주인에게서 갑자기 “이달 말까지 방을 빼 달라”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퇴거 요청을 받은 사람은 그뿐이 아니었다. 대만의 롄허(聯合)보에 따르면 올림픽을 앞두고 교외로 쫓겨난 지하실 거주자는 10만 명이나 된다.
20일부터 9월 20일까지 베이징 시내의 건설공사가 전면 중단됨에 따라 일감을 잃은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근로자)은 무려 100만 명에 이른다.
올림픽 여파는 유흥업소에도 미치고 있다. 올림픽을 전후해 룸살롱 등 유흥업소는 오전 2시 이전에 영업을 마감해야 한다. 시 정부 지시에 따라 여종업원들의 의상도 중국의 전통복장인 ‘치파오(旗袍)’로 통일했다.
○ 외국인도 예외 아니다
올림픽 날벼락은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유학생들은 대부분 비자 연장이 거부돼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지난달 말 쓸쓸히 귀국해야 했다.
기숙사 거주 유학생은 방학 기간에 귀국하거나 따로 거주지를 구해야 한다. 기숙사가 올림픽 관계자의 숙소로 이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방문비자(F)나 관광비자(L)로 들어와 주재원으로 일하거나 공부하던 유학생들은 최근 비자 전환 및 연장이 거부돼 어쩔 수 없이 귀국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외국인에 대한 사증 발급 제한으로 지난해 1∼5월 160만3000명이던 입국자(홍콩 대만인 포함)는 올해 157만8000명으로 1.6% 줄었다. 올림픽을 전후(7월 21일∼9월 20일)한 입국자는 지난해 80만 명보다 40% 가까이 줄어든 50만∼55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관광지 상점의 매출액은 올해 들어 10∼20%씩 떨어졌다. ‘올림픽 대박’을 꿈꾸던 베이징의 4성급 호텔 예약률은 현재 44%에 불과하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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