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내 손으로 多 만든다

  • 입력 2008년 3월 14일 03시 01분


갖고 싶은 제품 직접 제작해야 직성 풀리는 사람들

어린 시절 아버지들은 늘 무언가를 만드셨다.

장난감이 드물던 시절 막걸리통에 뚜껑을 단단히 닫아주면 동네 아이들과 놀기 좋은 공이 됐다. 연탄보일러를 수리하는 것도 화면이 지저분하던 TV를 이리저리 손봐서 어느덧 깨끗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도 아버지 몫이었다. 물이 새는 지붕을 고치는 것도 물론이다. 대량 생산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누리지 못하던 시절에는 많은 아버지들이 직접 무언가를 만드셨다. 싸고 좋은 물건이 널려 있는 요즘에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호모 파베르(만드는 인간)’의 본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작게는 가구에서부터, 카메라, TV, 자동차와 부품, 오디오 앰프, 의료기기에 이르기까지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인 사람들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대량생산이 이뤄지는 현대사회는 소비자를 단순하고 수동적으로 만든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 만들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이런 수동성을 깨부수려는 사람들이다.

요즘은 품목별 ‘만들기 동호회’도 많아 노하우와 노웨어를 쉽게 물려받을 수도 있다. 직접 만들면 땀 흘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값도 싸다.


▲ 영상취재·편집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손맛, 땀맛 그리고 쾌감

회사원 김태윤 씨(39)는 지난해 3월 아파트를 옮기면서 가전제품도 새로 살 생각이었다.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의 가격 정보를 보던 김 씨는 텔레비전을 선뜻 주문하지 못했다.

영화를 좋아해 42인치 액정화면(LCD)TV를 사고 싶었지만 값이 200만 원대로 너무 비쌌다. 어디선가 TV를 직접 조립하면 훨씬 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는 돈을 더 주더라도 그냥 사자며 남편을 말렸다. 김 씨는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원래 대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직접 조립했어요. 만들기에 취미가 있었지요. 전자기기가 복잡해 보이지만 직접 만들 때의 ‘손맛’을 어릴 때부터 알았다고나 할까요.”

퇴근 뒤 서울 용산의 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부품을 사 모았다. 부품 구입에만 2주가 걸렸지만 조립은 꼬박 하루면 충분했다. 고급 원목을 사 와서 화면 테두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든 비용은 100만 원이다.

김 씨는 “돈 100만 원을 아낀 것도 기분이 좋지만 다 만들고 난 뒤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집에도 없는 원목테두리의 TV를 보면서 김 씨 부부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TV를 본다는 뿌듯함을 얻는다.

회사원 이병철(37) 씨는 지난해 ‘나만의 골프채’를 만들었다.

“연습을 많이 해도 골프 스코어가 90대 중반에서 맴돌았어요. 골프채가 맞지 않아 그런가 싶어 고민하다 동호회를 통해 많은 골퍼들이 이런 고민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30만 원을 들여 아이언 한 세트를 만들었다. 뭔가 어색하고 공도 잘 맞지 않았다. 지인의 조언도 구하고 책을 보며 연구한 끝에 이 씨는 ‘내 몸에 맞는 골프채’를 만들었다. 3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으니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날린 셈이다.

이 씨는 “그래도 만족한다”고 했다. 골프채를 만들면서 골프의 원리를 터득하게 됐다. 또 만들고 난 뒤 잘 만들었는지 알아보려는 과정에서 연습량도 늘었다. 골프스코어도 80대 중반으로 10타나 줄었다.

이 씨처럼 골프채를 만들거나 튜닝하는 사람들을 ‘클럽 메이커’, ‘클럽 피터’라고 부른다. 헤드와 샤프트를 사와서 체형에 맞게 길이, 강도, 무게, 밸런스를 조율해 조립하는 사람들이다.

골프채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 모임인 ‘클럽 메이커’ 운영자인 채기웅 씨는 “예전에는 프로 골퍼들이나 골프채를 맞춤 제작했지만 1, 2년 전부터 주말 골퍼들도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손맛을 한 번 본 사람들은 만들기를 계속한다.

LCD TV를 4개나 만든 교사 박인호(35) 씨는 “만들 때 다른 일을 잊고 몰입하게 돼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며 “재미있는 소설책 읽을 때 밤새워 읽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든다”고 말했다.

26인치와 42인치 LCD TV를 직접 만든 대학생 배준용(22) 씨는 “내 손을 거친 부품이 하나하나 합쳐져 TV로 완성됐을 때의 성취감은 만든 사람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영상취재·편집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회사원 강동영(46) 씨는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직접 만든다.

그는 승합차에 달린 후방감지 카메라를 직접 만들었다. 덩치가 큰 승합차를 운전할 때는 후진이 가장 불편하다.

2000년 차를 사서 2년간 몰다 불편함을 느껴 2002년 카메라를 만들어 달았다.

강 씨는 “당시에는 후방감지 카메라가 에쿠스급 이상인 고급 승용차에나 달려 있었고 설치비용도 50만 원이나 됐다”며 “직접 만들면 더 싸지 않을까 생각해서 방법을 찾아봤다”고 말했다.

그는 CCTV에 연결되는 보안 카메라를 사서 차 뒤에 달고 운전석 옆에 달려 있던 TV에 전기선을 연결했다. 설치하는 데 10만 원이 들었다.

차량용 TV도 강 씨가 조립한 것이다. 두 자녀를 데리고 나들이를 갈 때 차가 막히면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성형외과 이희영(42) 원장은 뼈 깎는 기계를 아예 새로 만들었다.

원래 만드는 데 소질이 있었던 이 원장은 1999년 개원과 함께 턱뼈 깎는 기계를 고안했다. 레지던트 시절부터 수술실에 들어가 턱뼈를 깎았지만 입 안을 절개해 뼈를 톱처럼 썰게 돼 있는 미국산 의료기계로는 수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더 짧은 시간 안에 턱뼈를 깎아내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이 원장은 뼈를 조각하듯이 깎아서 수술 시간이 10여 분 걸리는 기계를 만들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마취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수술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기계를 찾아봤지만 시중에 나와 있지 않더군요.”

금형을 만들고 용접도 직접 하며 기계를 완성하는 데 걸린 기간은 3개월. 이후 이 원장은 의료기기를 만드는 벤처기업까지 만들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도 받았다.


▲ 영상취재·편집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실패도 한다, 그러나…

홍순영(37) 씨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 도전하고 있다.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인 홍 씨는 2006년 여름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자동차처럼 바퀴가 달렸지만 헬리콥터처럼 날개도 달린 것이다.

홍 씨는 오토바이에서 엔진을 떼어내고 헬리콥터 날개는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해 만들었다. 이를 차체에 붙이는 일은 용접소에 맡겼다.

모두 2500여만 원을 들여 3개월 만에 만든 작품은 ‘스카이 바이크 1호’였다. 하지만 실패로 끝났다. 엔진 출력을 높이자 헬리콥터 날개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나갔다.

홍 씨가 직접 타지 않고 원격조종을 한 데다 공터에서 시험 비행을 하여 인명 피해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라며 “쉽게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어서 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윤 씨처럼 TV를 만드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조립한 뒤에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먹통이 되기도 하지만 인터넷 동호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조율하고 마침내 성공도 한다.

‘맥가이버’ 강동영 씨는 말한다.

“물건을 만드는 재미 못지않게 만들어진 물건이 잘 작동되지 않을 때 이를 고치는 재미도 큽니다.”

글=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카페 가면 DIY 노하우-경험담 ‘가득’▼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초보자들은 선뜻 엄두를 못 낸다.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있는 관련 카페에 가입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LCD TV를 텔레비전을 손수 만드는 데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 네이버에 있는 ‘오픈 프레임 공식 카페(cafe.naver.com/openframe.cafe)’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회원이 많고 공동구매가 활발해 자신이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는 데도 유용하다. 제작기와 사용 후기를 올리는 회원도 많아서 만들다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참고가 될 만한 글을 접할 수 있다.

다음 카페인 ‘DIY LCD(cafe.daum.net/diyLCD)’도 회원 활동이 활발한 카페다.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한 필수 부품인 전자 키트와 관련된 정보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cafe.naver.com/joonggonara.cafe)’에서 구할 수 있다. 이 카페는 회원이 160만 명이 넘는다.

골프채를 직접 만들고 싶다면 네이버 카페 ‘클럽 메이커(cafe.naver.com/clubmakers.cafe)’에 들어가 보자.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골프채를 만든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한국형 비행자동차를 연구하는 모임도 있다. 인터넷 ‘버딕 프로젝트(www.birdic.com)’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된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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