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없이 나눠줄 수는 없어… 성장 그 다음이 분배”

  • 입력 2008년 1월 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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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라는 특명을 받고 경제 성장의 해법을 찾고 있는 석학 자크 아탈리 프랑스성장촉진위원회(일명 아탈리 위원회) 위원장. 그는 “먼저 성장이 있고 그 다음에 분배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라는 특명을 받고 경제 성장의 해법을 찾고 있는 석학 자크 아탈리 프랑스성장촉진위원회(일명 아탈리 위원회) 위원장. 그는 “먼저 성장이 있고 그 다음에 분배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자크 아탈리, 한국의 길을 말하다

인터뷰=송평인 파리특파원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64) 씨를 지난달 27일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의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위임으로 ‘아탈리 위원회’를 이끌며 최종 보고서 제출을 눈앞에 둔 바쁜 와중에서도 본보와의 신년인터뷰에 특별히 시간을 할애했다. 세계 각국의 각계 전문가로 이뤄진 아탈리 위원회는 프랑스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찾아 16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아탈리 씨는 사회당 쪽 인사로 분류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의 폭넓은 식견을 인정해 그에게 프랑스 경제성장의 열쇠를 쥔 위원회를 맡겼다.》

최근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 ‘간디, 모욕당한 자의 각성’이란 책을 펴내셨고 2년 전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전기 ‘카를 마르크스 또는 세계의 정신’을 쓰셨습니다. 상반된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의 얘기를 차례로 썼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오늘날 간디인가요.

“나는 세계를 ‘힘이 아니라 생각으로’ 변화시킨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서구에서 시작된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기회와 위험을 간파했던 첫 사상가였습니다. 간디는 서구의 밖에서, 세계화로 초래된 식민 지배 문제에 응답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서로 보완적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그 속에서 증대하는 불평등을 예측했습니다. 간디는 그 세계사적 불평등을 몸으로 체험했던 사람이죠. 간디는 불평등과 싸우기 위해 폭력 이외의 모든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미디어를 철저히 이용한 사람도 드뭅니다. 마르크스의 분석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인류가 해야 할 일은 그 불평등을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하는 것입니다.”

―미국과 달러화의 쇠퇴를 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과 달러화의 위력은 언제까지 갈까요.

“미국이 강대국이 된 요인 중 하나는 인구 문제에서 개방 정책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이민이 없었다면 미국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이 개방과 성장 정책을 지속하는 한 앞으로도 상당 기간 강대국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유일한 강대국은 아닐 것입니다. 점차 여러 강대국이 등장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달러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달러와 유로는 상당 기간 공존할 것입니다. 유로화는 아직 달러화만큼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달러는 약 2세기 동안 존재했지만 유로는 단지 10년간 존재했을 뿐이니까요. 유럽이 정치적으로 진정한 강국인지, 유로화는 신뢰받을 수 있는 통화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지난해 지구온난화가 인류의 최대 걱정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인류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성장을 줄이지 않고 성장의 방향을 재조정함으로써 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은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겁니다. 태양 에너지와 대체 에너지 기술 및 관련 산업 등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도시화 문제도, 건축과 교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은 이것이 엄청난 규모의 시장임을 깨닫고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최근 저성장으로 고민하는 한국도 아탈리 위원회의 보고서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이 다시 고성장의 궤도로 들어서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세계 어디나 성장의 요인이란 같습니다. 민주주의, 기술, 투명성, 타인에 대한 개방성,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능력, 혁신,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능력, 이런 것들이 성장의 조건입니다. 한국은 이 중 거의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오늘날 한국이 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외국에 대한 개방성입니다. 성장을 위해 완전하고 전면적인 개방을 권하고 싶습니다. 외국인 투자뿐만이 아니라 외국 기업의 진출이나 이민정책에서도 더욱 개방적인 태도로 가야 합니다.”

당신은 과거 분배를 성장에 앞세웠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습니다만 지금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성장 위원회를 맡아 연구하고 있습니다. 모순적인 일 아닌가요.

“분명한 것은 ‘물건을 생산해내지 않고는 나눠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성장이 있고 그 다음에 분배가 있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프랑스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고 가장 많이 쉬면서도 즐겁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요.

“저는 프랑스인이 즐겁지 않다고 말한 적은 없고 ‘충분히’ 즐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웃음) 즐거움은 뭔가 만들어가는 데서, 개인적인 혹은 공동의 프로젝트를 성취해가는 데서 나오는 것인데 프랑스는 여가가 있어도 그런 ‘삶의 프로젝트’가 없기 때문에 충분히 즐겁지 않은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열정을 가진 일에서 옵니다.”

―프랑스도 고등교육을 놓고 고민하지만 한국도 고등교육에 문제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미국과 같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혁신은 국가의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날 미국이 강국이 된 것도 혁신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연구 인력이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연구자란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사람이며 그 사회에 민주적인 삶이 가능한 틀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이 같은 연구자들이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충분한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프랑스는 사르코지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실용주의 노선으로 외교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우파 혹은 중도 우파로 불리는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한국은 미래를 위해 어떤 외교 노선을 취해야 할까요.

“중국은 동아시아를 미국과 일본의 영향으로부터 떼어놓음으로써 헤게모니를 쥐려 합니다. 그런 중국이 있기에 북한에서 독재 정권이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한반도의 위협과 중국의 부상에 자극받아 군사력 강화에 나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주변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장래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의 거대 공동 시장 형성을 목표로 삼고 그 시장의 중심지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최근 그르노블대 오케스트라에 초청돼 지휘했고 예전에도 가끔 지휘를 했습니다. 음악이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지휘를 할 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파돼 음악으로 솟아나면서 느끼는 기쁨은 형언하기 힘든 것입니다. 평소에는 피아노를 치면서 이런 기쁨을 느낍니다. 한국에서도 지휘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웃음).”

―1년에 평균 2권의 책을 쓰고 계시며 분야도 전문서적에서 전기, 소설, 희곡, 어린이를 위한 콩트까지 갖가지이고 관심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지식을 축적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나요.

“열정, 그리고 호기심입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 석학

‘사르코지 성장위원회’ 이끌어▼

○ 자크 아탈리는 누구

자크 아탈리(사진)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석학. 외국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한 글로 생각을 전하는 소수의 프랑스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프랑스 최고의 수재들이 들어가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1966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파리정치학교(시앙스포), 국립행정학교(ENA) 등을 나온 뒤 1972년 소르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특별보좌관으로 그를 최측근에서 도왔다. 현재 컨설팅 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를 운영하면서 국제 비영리기구 ‘플래닛 파이낸스’를 설립해 소액 대출을 통한 빈곤 퇴치 운동도 펼치고 있다.

2006년 출간한 ‘미래의 짧은 역사’는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씨 등의 영어권 미래학자들에 필적하는 관심의 폭과 깊이로 각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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