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저녁마다 팩하는 남자들이 뜬다니까∼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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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만난 한 친구가 “얼굴 좋아졌는데…”라고 운을 떼자 “관리 좀 받았지”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이어 서울 강남의 △△피부과에서 주름관리 시술을 받으면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거나, ○○브랜드의 화장품이 좋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이번에 중요한 만남이 있는데 한 번 가봐야겠다는 말도 이어진다. 피부에 신경을 쓰는 여성들의 수다가 아니다. 직장인 전종기(31) 씨가 밝힌 ‘남자들의 모임’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다. 전 씨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미용 및 피부 성형 관련 이야기가 대화의 20%는 차지하고 나머지는 직장, 여자, 패션 이야기”라며 “40대 이상은 얼굴 주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미용에 대한 관심이 성과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모-패션에 목숨 바치는 남자 그루밍족이 사는 법

○ 그루밍족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전 씨는 전형적인 ‘그루밍족’이다. ‘몸치장을 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groom’에서 나온 말로 패션과 외모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지칭한다. 전 씨는 실제 모공 및 여드름 관리를 위해 가끔 피부과에서 ‘프락셀’ 레이저 수술을 받고, 에센스도 매일 챙겨 바른다.

그루밍족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한 패션업체의 비주얼머천다이징(VMD)부 조은찬(45) 부장은 아이크림, 수분에센스, 선블록 크림까지 꼬박꼬박 챙겨 바른다. 일주일에 두 번 모공수축용 클렌징 화장품으로 세안하고, 가끔 피부과에서 마사지도 받는다. 자신의 옆모습에 불만을 갖고 5년 전 치아 교정까지 받아 코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40대 중반에 웬 야단이냐고? 그렇지 않다.

조 부장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성형이든 피부관리든 적극적으로 받는 게 좋다”며 “자신감 없는 부위를 안고 생활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 사회생활에서 위축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교 3년생 김순호(18) 군은 시험이 끝난 뒤 서울 강남의 피부과에서 2차례에 걸쳐 여드름 스킨스케일링을 받았다. 그는 “수능이 끝나고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찾는 건 친구들 사이에 비밀이 아니다”며 “서로 피부관리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모델 기획회사에 다니는 매니저 임경진(27) 씨는 친구들을 만나면 ‘미용 강의’를 한다. 관심은 있지만 귀찮거나 몰라서 피부 관리를 못하는 친구들에게 화장하는 방법, 선호하는 챕스틱 브랜드, 솜씨 좋은 미용실에 대해 알려준다. 그는 “요즘은 개인 관리 시대”라며 “운동을 하고 좋은 걸 먹는 것만큼이나 외모를 가꾸는 일도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메트로 섹슈얼’ ‘꽃미남’ 등 외모에 관심을 갖는 남성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많이 등장했다. 그루밍족은 이들과는 다르다. 남성성을 유지하면서 여성성을 조금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강했던 메트로 섹슈얼이나, 여성의 관점에서 본 미남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꽃미남과 달리 그루밍족은 외모 관리에 훨씬 적극적이다.

○ 남성들, 피부과 성형외과 문턱을 넘다

이런 풍조 때문인지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문턱을 밟는 남성이 크게 늘고 있다.

고운세상 피부과 네트워크에 따르면 이 병원을 찾는 남성은 매년 2∼3%씩 늘고 있다. 특이한 점은 50대 남성은 2005년에는 3.12배, 지난해에는 4.07배나 늘어 전 연령대에서 가장 크게 늘었다. 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피부관리를 받고 있는 한 50대 대기업 임원은 “30대가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등 무한경쟁 시대에 외모를 젊게 가꾸는 게 나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피부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뒤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찾는 학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초이스피부과 최광호 원장은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 혼자 병원을 찾는 남학생도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명동 아름다운나라피부과성형외과에 따르면 남성들이 선호하는 피부관리는 흉터(32%) 여드름(25%) 미백(23%) 주름(12%) 모공(6%) 등이었다. 압구정서울성형외과에 따르면 남성들이 선호하는 성형수술 부위는 눈(26%) 코(22%) 주걱턱(20%) 사각 턱(13%) 돌출 입(4%) 순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입사 시험, 미팅, 세일즈 때 성적, 집안, 팔고자 하는 물건 등에 대한 기본 정보가 사전에 알려진 상황이라면 외모가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며 “외모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그루밍이 트렌드가 되다보니 연구소에서도 깊게 연구해야 할 주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 주의할 점

성형외과 시술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여러 곳을 무리하게 한꺼번에 성형할 경우 과다출혈이 올 수 있다. 또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 시술을 받는 게 좋다.

압구정서울성형외과 이민구 원장은 “수술 전 건강상태나 병력을 알아보고 마취 전 검사를 철저히 해야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며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는지 등 안전 시스템을 확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남성이 흔히 받는 코 수술은 보형물로 인한 염증이 생기기 쉽다. 욕심을 너무 내 무리하게 코를 높이려 하면 안된다. 턱은 자칫 잘못 깎으면 얼굴이 비대칭으로 보이거나 너무 날카로워 보일 수 있다.

박상훈성형외과 박상훈 원장은 “얼굴 뼈 수술은 사춘기가 끝나고 성장판이 다 자란 후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 미남의 역사, 변덕도 많네▼

“정일우 턱에 현빈 코 해주세요. 권상우 눈은 어떨까요?”

성형외과에서 연예인을 모델로 삼아 성형수술을 해달라는 사람이 많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선호하는 외모가 달라지면서 모델로 꼽히는 연예인도 달라졌다.

1980년대 이전에는 턱이 크고 선이 굵은 얼굴형이 인기였다.

1960년대에는 남궁원, 신성일 씨가 대표적인 미남 배우였다. 짙은 눈썹에 강인한 턱으로 모두 야성미를 풍긴다. 1970년대는 노주현, 한진희 씨, 1980년대는 임채무, 이영하, 이덕화 씨로 이어지면서 굵은 쌍꺼풀, 깊고 날카로운 눈매, 오뚝한 콧날 등이 강조됐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최재성, 손지창, 차인표 등 세련되지만 남성미가 뚜렷한 연예인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트렌드는 199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바뀐다. 정우성, 송승헌, 배용준, 장동건 등 부드러운 여성성이 살짝 가미된 스타들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 얼굴 크기도 작아졌고 쌍꺼풀이 너무 짙지 않으면서 코도 너무 크지 않은 얼굴들이다.

2000년대 들어 권상우, 현빈, 강동원, 김현중, 정일우 등 여성이 봐도 ‘아름다운’ 얼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영화, 음반 활동을 통해 이런 연예인들은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을 풍긴다.

압구정서울성형외과 이민구 원장은 “10년 전에는 약간 큰 코를 남성미가 강하게 풍기는 잘 생긴 코로 봤지만 최근엔 라인이 날렵한 코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강하고 날카로운 느낌의 눈을 좋아했다”면서 “최근엔 얇은 속 쌍꺼풀이 있어 귀여우면서도 눈웃음을 짓는 듯한 부드러운 느낌의 큰 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미의 대표’가 되는 연예인을 알려면 화장품 모델들을 살펴보면 된다.

아모레퍼시픽의 남성전용 화장품 ‘헤라 옴므’의 모델은 장동건, ‘라네즈 옴므’의 모델은 조인성이다. LG생활건강의 ‘오휘포맨’은 공유, ‘보닌 Rx 라인’은 조승우다. 올해 처음 남성라인을 내놓은 랑콤 맨은 김명민을 모델로 내세웠다.

남성화장품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다. 2003년 3200억 원에 불과했던 남성화장품 시장은 지난해 4900억 원으로 53% 늘었다. 샤넬, 크리스티앙 디오르, DHC, 르네휘테르 등 남성라인을 내는 화장품 브랜드도 크게 늘었다.

화장품의 종류도 스킨로션에서 세안제품, 면도제품, 에센스, 크림, 자외선차단제, 팩 등으로 다양해졌다. 스틱 파운데이션, 비비크림을 바르는 남성도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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