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벼랑끝 외교전술, ‘용남산 줄기’에서 나온다

  • 입력 2007년 3월 27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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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생일 앞둔 평양‘태양절’로 불리는 고 김일성 주석의 95회 생일(4월 15일)을 앞두고 26일 퍼레이드 연습에 동원된 평양 주민들이 주체사상탑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강 건너 청색 기와 건물이 인민대학습당. 그 아래에 김일성 광장이 있다. 평양=연합뉴스
김일성 생일 앞둔 평양
‘태양절’로 불리는 고 김일성 주석의 95회 생일(4월 15일)을 앞두고 26일 퍼레이드 연습에 동원된 평양 주민들이 주체사상탑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강 건너 청색 기와 건물이 인민대학습당. 그 아래에 김일성 광장이 있다. 평양=연합뉴스
《국제사회에서 골치 아프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통하는 북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가운데서도 수십 배의 경제력을 가진 남한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당당하게 얻어 내는가 하면 협상장에선 세계 최강 미국까지 두 손 들게 만든다. 6자회담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모든 참가국이 북한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 양태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나름의 독특한 잣대를 읽어 내지 못한 것이 주요인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한을 움직이는 지도층의 가치관과 행동방식을 파악하기 위해 통일부 인명록에 수록된 북한 주요 인물 455명의 이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북한에서 ‘용남산 줄기’로 불리는 김일성종합대(김일성대) 출신들이 북한 지도부를 점령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남·외교 분야 ‘예외 찾기 힘들어’=분석 대상 455명 중 학력이 확인되는 인물은 모두 127명. 이 중 김일성대 출신은 3분의 2에 해당하는 80명이며, 비(非)김일성대 출신은 47명이었다. 수도에 위치한 국립대가 권력 엘리트를 양산하는 점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다. 하지만 김일성대의 경우는 예외적이라 할 만큼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김일성대 출신의 권력 독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비김일성대 출신의 대다수는 김일성 주석 시기에 등용된 구세대다. 47명 중 옛 소련, 중국, 일본 등 해외 유학파가 27명으로 이들 대다수는 이미 은퇴했거나 사망했다. 이 밖에 간부 재교육 대학으로 사실상 출신 대학을 알 수 없는 국제관계대학 출신 9명과 군부대학 출신 6명을 제외하면 김일성대 이외의 대학을 나온 인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

특히 대남담당 부서와 외교 분야는 거의 전부가 김일성대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이었던 고(故)김용순 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과 전금철 부위원장, 이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부위원장, 고 송호경 부위원장이 모두 김일성대 출신이다. 지난해 6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반도가 화염 속에 휩싸일 것”이라는 발언으로 유명해진 안경호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위원장도 마찬가지.

남북 장관급회담 대표인 권호웅 내각참사와 이산가족 상봉을 담당하는 최승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도 김일성대 출신이다.

통일부 자료는 대남 외교 등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인물만 학력이 비교적 자세히 올라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핵심 지휘층을 장악한 김일성대 출신의 권력 분포는 다른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권력 핵심층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본인을 비롯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위원장과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올해 1월 사망한 백남순 전 외무상 등 주요 요인이 모두 김일성대 출신이다. 김 위원장의 누이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부장과 매제 장성택 부부장, 김 위원장의 오른팔인 이제강, 염기순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북한 사법부는 김일성대 출신이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과대는 김일성대 한 곳에만 있다.

김일성 주석은 ‘백두산 줄기’로 불리는 빨치산 동료들을 측근에 중용하면서 통치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김정일 위원장 시대에 대부분 은퇴한 뒤 김 위원장의 동문이자 ‘용남산 줄기’로 불려 온 김일성대 출신이 그 자리를 메운 사실이 이번 분석에 따라 확인됐다.

▽결속력은 장점, 경직성은 ‘한계’=북한의 대학은 280여 개. 그중에서 특정 대학의 사회계열 출신이 국가 지도부를 독점하는 사실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장점은 결속력. 김일성대에서는 늘 ‘체제가 붕괴되면 가장 먼저 교수대에 서야 할 사람들은 김일성대 졸업생’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게 교육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생겨난 결속력은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경직성으로 통한다. 이 같은 조직에서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획일적인 사고만이 판을 치기 마련이다.

강한 규율과 복종도 대학에서 배운다. 김일성대의 규율 생활은 군에서 10년씩 복무하고 온 제대 군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런 생활을 6, 7년 거치면 조직 위주의 의식구조가 체질화된다.

특히 외부 세계와 단절된 북한식 대학교육은 학생들이 국제적 시야를 갖추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김일성대 교재에는 ‘지정학적’, ‘동북아질서’ 등등의 국제질서를 나타내는 초보적인 용어조차 없다. 대신 세계의 중심이 ‘조선’이라고 가르친다. 국제 외교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북한의 주특기인 벼랑 끝 전술이나 ‘몽니’ 배짱은 이런 ‘주체식’ 교육에서 연유한다.

이러다 보니 국제사회의 흐름을 잘 알고 이에 맞추는 외교관은 김일성대 조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6자회담에서 북한이 ‘현금을 쥐어야만 회담장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외부의 눈으로 볼 때는 기이한 일이다. 하지만 ‘김일성대적인’ 시각과 기준에서는 오히려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 같은 김일성대의 교육 과정은 국가 존폐의 열쇠를 경제력에서 찾지 않는다. 항일 빨치산식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정신력과 단결력만 있으면 무궁무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맹목적 의식을 주입받는다. 김일성대 출신들은 상관이 모두 동문 선배인 조직에서 힘들게 인정받으며 한발 한발 승진한다. 이렇게 해서 남북회담장까지 나온 이들은 ‘줄을 잘 선 덕에 어느 날 벼락출세한’ 일부 남측 대표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3대줄기’와 김일성대

백두산 줄기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최고성분 꼽혀

낙동강 줄기 6·25전사자 유족… 자녀승진 탄탄대로

용남산 줄기 김정일과 대학동문… 성분 검증된 계층

‘용남산 줄기’는 김일성종합대 졸업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용남산을 중심으로 김일성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 그러나 용남산은 해발 37m로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깝다.

북한에는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3가지 형태의 ‘줄기’가 있다.

첫째는 ‘백두산 줄기’. 김일성 주석과 빨치산 투쟁을 함께 하다 전사했거나 죽을 때까지 숙청되지 않은 수백 명의 동료와 가족을 가리킨다. 북한에서 가장 출신이 좋은 사람들로 증손자나 6촌 이상의 친척까지 조상 덕을 단단히 본다. 백두산 줄기에 해당되면 김일성대는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

둘째는 ‘낙동강 줄기’.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북한군 병사들의 가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의 자식들은 승진하는 데 걸림돌이 없다. 물론 백두산 줄기와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문을 의미하는 용남산 줄기가 있다. 대학 입학 당시 6촌까지의 출신성분을 따져 선발된 핵심 계층이다. 김일성대의 인기는 다른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노동당 교육부에도 김일성대만 담당하는 부처가 별도로 있다.

김 위원장은 1960년 김일성대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 4년 뒤 졸업했다. 그가 입학하는 날 용남산 마루에서 지었다는 가사 ‘조선아 너를 빛내리’는 북한이 내세우는 ‘불후의 명곡’으로 통한다. 북한을 통치할 그의 야망이 잘 드러나는 노래다.

1946년 창설된 김일성대는 지난 60년간 7만8000여 명을 졸업시켜 연평균 1300여 명을 배출했다. 3개 단과대와 11개 학부가 있다. 단과대는 모두 최근 10년 내에 만들어졌다. 김일성대 안에서도 쉽게 간부로 등용되는 사회계열에 비해 연구소에 파견되기 일쑤인 자연계열의 인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김일성대 규율은 군대보다 엄격하다. 술 담배를 하다가 적발되면 퇴학이다. 기숙사에서는 식사시간에 학부별로 통과할 때까지 대열합창을 하며 잠자기 전에는 점호가 있다. 점호에서 지적되면 집단으로 밤 12시가 넘게 처벌 청소를 하기도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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