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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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선구자 이수광/한영우 지음/292쪽·1만8000원·경세원

교과서를 통해 그 이름이 각인된 지봉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의 저자이자 조선 실학의 선구자다. 그는 다산 정약용이나 연암 박지원처럼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실학자는 아니다.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가 펴낸 이 책에 그 해답이 있다. 한마디로 지봉은 우리에게 익숙한 실학자의 전형이 아니다. 다산처럼 정치적으로 불우한 남인도 아니었고, 연암처럼 권력의 핵심에 있던 노론 가문이면서도 세상을 거침없이 비판한 반체제적 인사도 아니었다.

지봉은 22세에 과거 급제한 이후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대사성, 대사헌, 대제학과 이조·병조·공조 판서를 지낸 성공한 관료였다. 지난해 실학 연구의 부활을 주창하고 나선 한 교수가 지봉을 다시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실학이 ‘반(反)성리학이냐, 성리학의 변형이냐’라는 학계의 논쟁을 그 출발점에서부터 검토해 보자는 뜻일 것이다.

지봉은 후대의 실학자들과 차별되면서도 공통된 특징을 지녔다. 그것은 성시산림(城市山林)이라 불린 서울 학인 지봉과 그가 교유했던 경기 학인의 독특한 지적 배경에 있다. 지봉은 지방산림과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사승관계 없이 관직에 진출한 독립적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정의 정권이 남인-북인-서인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그들과 두루 교유할 수 있었다.

그는 또 성리학 중에서도 도가의 영향이 짙은 소강절(邵康節)의 상수역학에 심취했다. 주자학의 세계관에서 국가와 역사는 도덕적 존재이지만, 인간의 마음과 우주만물이 평등하다는 상수역학의 세계관에서 국가와 역사는 물질적 변화 과정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지봉은 후대의 실학자들과 만난다.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활약한 그들은 국제 조류에 민감하고 부국강병의 실용정책을 추구했다. 따라서 그들은 반(反)성리학자라기보다는 탈(脫)주자학자, 또는 한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신유학자’인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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