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지하조직 구축” 지령받고 386포섭…장민호 ‘일심회’조직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 국정원-검찰이 밝힌 혐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미국 시민권자 장민호(미국명 마이클 장·44) 씨가 ‘일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386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포섭해 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1989년 처음으로 밀입북한 장 씨는 “지하조직을 구축하라”는 지령을 받고, 일단 학연을 이용해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 접근했다.

1997년 Y고 동문 모임에서 학생운동권 출신 사업가 손정목(42·구속) 씨를 만나 일심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장 씨는 이미 1993년 두 번째 방북 때 노동당에 입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씨는 이어 고려대 82학번인 이모(43) 씨와 이정훈(43·구속) 전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을 잇달아 포섭했다. 공안당국은 Y고 출신으로 고려대 82학번인 여권 인사 A 씨의 소개로 두 사람이 장 씨와 처음 안면을 트게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 머물고 있는 A 씨는 “내가 이정훈 씨를 장 씨에게 소개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장 씨는 지난해에 손 씨의 소개로 만난 최기영(41) 민노당 사무부총장을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의 포섭 대상이었던 이, 손 씨 등은 “일심회라는 조직에 대해선 모른다. 장 씨와 대질신문을 해 달라”며 가입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일심회는 반국가단체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강령을 원용했다는 게 공안당국의 설명이다. 장 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시민단체, 민노당 서울시당 등으로 분야를 나눠 정보를 수집해 온 것으로 공안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공안당국은 일심회에 연루된 386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공안당국은 이번 사건 연루자가 최대 20명 선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선 정치권에 진입한 386 인사들이 연루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여당의 모 국회의원이 장 씨와 절친하게 지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이 24일 장 씨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국정원이 확보한 메모 등에는 박모 전 의원의 전 보좌관 박모 씨, 시민단체 간부 김모 씨 등 6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장 씨와 성균관대 국문과 동기(81학번)로, 지금은 북한에서 석재를 채취해 남한으로 들여오는 대북사업을 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박 씨의 경우는 북한을 드나들 때마다 당국에 접촉 보고서를 제출해 왔다”고 전했다.

박 씨는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장 씨를 대학동창 모임에서 종종 봤다”며 “대학 동기를 만난 것이 문제가 되면 어떡하느냐”라고 당혹스러워했다.

국정원은 메모 외에도 장 씨의 컴퓨터와 휴대형 저장장치(USB메모리), 디스켓, e메일, 서류 등을 압수한 것으로 전해져 장 씨와 접촉한 인사들의 명단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장 씨로부터 압수한 물품 가운데에는 음어(陰語)로 적힌 서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내용을 해독하면 다른 인물들의 연루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또 국정원은 올 3월 장 씨와 이정훈 씨 등이 중국 베이징(北京)을 함께 방문하고 돌아온 뒤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의 통화 내용을 분석해 왔다. 국정원은 통화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추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장민호 행적은

87년 美서 포섭돼…93년 노동당 입당
국내 들어와 IT전문경영인으로 활동

‘북한 공작원 접촉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장민호 씨는 10년 넘게 북한 쪽과 연결돼 온 것으로 공안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장 씨는 1981년 성균관대 국문과에 입학했다가 1982년 10월경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면서 버클리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에는 미군의 그라나다 침공 반대시위에 참여해 체포된 경력도 가지고 있다.

장 씨는 1987년 미국에서 친북인사에게 포섭돼 1989년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가게 됐다는 게 공안당국의 설명이다. 이때 장 씨는 사상교육 등을 받은 뒤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것.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89년 미군에 입대한 뒤 주한미군으로 파견돼 서울 용산과 대전에서 물류병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의 정세를 북한에 보고해 왔다고 한다.

1993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장 씨는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다. 이 때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충성서약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국내로 들어온 장 씨는 대기업 L사에 입사해 ‘마이클 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최연소 팀장이 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의 부장으로 일했고 S컴퓨터 회사 계열사인 N사 대표, 게임전문 위성방송업체 G사 대표 등을 지냈다.

그만큼 능력 면에서는 충분히 인정을 받았고 지인들 사이에서는 정보기술(IT) 분야의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심회’를 조직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공안당국은 보고 있다. 1997∼2003년에 학연 등을 바탕으로 포섭 대상자를 물색한 뒤 충분히 신뢰가 쌓이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조직원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장 씨는 일부 혐의를 시인하긴 했으나, 추가 연루자가 있는지에 대해선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간철활동 박용 범민련 사무부총장, 김승규 반대로 입국못해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6월 광주에서 열린 ‘6·15 통일대축전’에 해외대표단으로 참석하려던 총련계 박용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의 입국을 막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는 6·15 공동선언 일본지역위원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입국하려 했었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27일 “김 원장이 ‘간첩을 귀국시키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린다. 국정원 방침과 어긋나는 일을 허용할 수 없다’며 반대해 결국 박 씨가 입국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 씨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 각종 반체제 활동에 관여했으며 2004년 ‘민경우 간첩사건’ 당시 배후 인물로 지목돼 공안기관이 ‘대남공작원’으로 분류했다.

민 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에는 “박 씨가 2000년 9월∼2002년 12월 공작금 3300만 원을 민 씨가 사무처장으로 있던 범민련 남측본부의 계좌로 송금해 한국 내 친북단체의 활동 상황 및 정치 정세와 관련된 국가 기밀을 수집 보고하도록 지령했다”고 돼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6·15 통일대축전을 앞두고 대북관계 등을 고려해 박 씨의 입국을 허용하기로 결정하고 총련에 박 씨의 참석을 요청했다. 6·15 통일대축전의 남측 정부 대표단장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었다.

그러나 김 원장은 박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들어 “입국과 동시에 소환 조사해야 한다. 법대로 처리하겠다. 제2의 송두율(재독 사회학자) 사건을 허용할 수 없다”고 완강히 반대했다. 결국 통일부는 박 씨의 입국을 취소했다.

박 씨의 입국 취소에 대해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겨레의 통일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남조선 파쇼 공안 당국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범죄 행위”라고 반발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386 운동권 인사들이 연루된 간첩 사건 수사에 대한 김 원장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