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귀농] “귀농보다 중요한건…” 흙에서 꿈 캐는 2030 농업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4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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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출퇴근이라는 게 없는 치열한 작업이거든요. 과일 파느라 1년 내내 고속도로 휴게소 차안에서 쪽잠을 잤어요.”

청년의 꿈은 농업이 아니었다. 농민인 아버지 뜻에 따라 농고와 농대에 진학했지만 농사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에서 ‘애플수박’을 맛보고 꿈이 생겼다. ‘맛있고, 간편한 애플수박은 분명 대박이 날거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종자를 사다 심고, 271㎞ 떨어진 서울을 수시로 오가며 직접 영업을 뛰었다.

이제는 어엿한 작목반장이자 농가 경영인이 된 청년농부 강상훈 씨(26·전북 고창군)의 이야기다. 강 씨는 젊은이답게 소셜 커머스 유통 담당자들을 직접 만나 판매 통로를 개척하고 있다. 매일 같이 사업계획서를 쓰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한다. 그는 “단순히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농산물을 이용해 영업과 마케팅 등 다방면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창농의 매력”이라고 귀띔했다.

그의 사례는 ‘창농’을 준비하는 청년농부 지망생들이 맞게 될 미래다. 농촌을 창업의 무대로 꿈꾸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단순히 농산물 생산(1차 산업)에 그치지 않고 가공(2차 산업)하거나 체험 관광 상품(3차 산업)으로 확장하는 일명 ‘6차 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채널A는 청년 농부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귀농 창농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 ‘청년 창농캠프’를 마련했다. 이번이 3회째다. 12, 13일 양일간 열린 행사에는 전국 각지의 2030청년 37명이 몰려들었다.

12일 오전 비가 내렸지만 대부분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채상헌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는 “여러분 영화 ‘리틀 포레스트’ 보고 참석하셨나요?”라며 행사의 포문을 열었다. 올 초 개봉한 이 영화는 도시에 지친 젊은이들이 귀농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채 교수는 “귀농은 사회적 이민”이라며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사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인 만큼 자신에게 농촌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떠나라”라고 조언했다.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첫 방문지는 6차 산업의 대표 주자인 ‘상하농원’이었다. 매일유업이 전북 고창군 상하면에서 이름을 따 만든 상하농원은 약 9만 평에 이르는 부지에 설립된 농촌형 테마공원이다. 참가자들은 치즈 공장과 주변 농가 돼지고기를 활용한 소시지 만들기를 체험했다. 상하농원에 딸기, 블루베리, 애플수박 등을 공급하는 농가 두 곳도 방문했다.

이튿날엔 학원농장이 운영하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탐방했다. 이하영 씨(20)는 “앞으로 딸기농장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 농장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 농부 7명이 멘토로 나선 세미나에선 참가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작물 선택’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청년농부 최세진 씨(27)는 “우선 살고 싶은 지역을 택하고, 그 곳의 특산물을 작물로 택하라”고 조언했다. 보통 특산물은 그 지역 환경에 가장 적합한 품목일 확률이 높고, 이미 구축된 유통방식이 있어 판매도 수월하다는 것이다.

한 참가자는 “부모님이 일구는 땅이 없어도 농업으로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영복 씨(34)는 “땅에 작물을 심는 게 아니더라도 가공품을 만들어 파는 식으로 농업에 뛰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농사짓는 부모님과 별개로 구운 계란을 만들어 오픈 마켓에 내다파는 방식으로 사업체를 일궜다.

7명의 멘토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융화다. 농사 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생활 기반으로써 지역에 정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지역 주민과 친해지면 농사기술은 자연스럽게 전수된다.

고창에 귀농한 딸기 농부 김봉주 씨(38)는 “농촌의 생활 방식, 농촌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갈등만 커지고 정착하기 어렵다”며 “귀농보다 귀촌이 먼저”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3번째 창농캠프에 참가한 정다운 씨(33)는 “내년 초 본격적으로 전북 완주군에서 하우스 농사를 시작할 예정인데, 창농캠프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며 “선배 농부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농사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고창=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농업에 유통과 관광 등 융·복합한 6차 산업, 성장 잠재력 무궁무진”▼

청년 창농캠프 참가자들은 전북 고창 상하농원과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방문한 뒤 농업에 유통과 관광 등을 융·복합한 6차 산업 사업모델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귀농해 딸기농사를 짓는 김봉주(36) 씨는 복분자와 수박의 고장인 고창에서 딸기를 또 하나의 대표 상품으로 만들려 도전하고 있다. 딸기를 직접 파는 것 외에도 상하농원 시설을 이용해 딸기잼을 제조하고 현장 판매한다. 진공동결 건조 방식으로 가공한 딸기 스낵을 ‘하하네 상콤 딸기’ 브랜드로 판매한다. 상하농원 과일공방에선 딸기잼 만들기를 체험할 수도 있다. 생산(1차 산업)에 그치지 않고 가공(2차 산업)과 체험관광 사업(3차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상하농원이 지역 농민과 연계해 만든 체험 상품은 올해 어린이날 하루에만 4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좋다. 매일유업은 정부로부터 100억 원을 투자 받고 370억여 원을 자체 투입해 지역 농업과 상생하는 6차 산업 모델을 상하농원에 구축했다. 2016년 문을 연 상하농원에선 농업 생산부터 가공, 체험관광 상품(소시지·빵 만들기 체험, 우유·치즈공장 견학, 동물 먹이주기 체험 등)을 한 자리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박재범 상하농원 대표는 “기업의 투자와 체계적인 행정 지원으로 농촌의 역할을 확장하는 새로운 6차 산업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참가자 김하늘 씨(28)는 “22살 때부터 표고버섯 농사를 하면서 체험 관광상품과 접목시키려 노력 중인데 혼자 하려니 어려움이 컸다”며 “상하농원 사례를 보면서 주변 농가, 시설과 연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과일 가공식품 관련 창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신세영 씨(23)는 “농장에서 생산한 딸기로 상하농원에서 동결건조 스낵을 만들고, 또 딸기로 체험 관광 상품을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실제 사업을 하면서 역할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방문한 청보리밭 축제를 운영하는 학원농장도 단순히 보리를 재배해 수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리밭의 경관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창업 지망생들에겐 대표적인 ‘경관농업’ 사례인 셈이다. 정부는 해바라기, 코스모스, 달맞이꽃 등 특정 작물을 일정 규모 이상 키울 경우 관광상품으로 인정하고 경관보전 직불금을 지급한다.

국내 경관농업의 개척자인 진영호 학원농장 대표는 “연간 50만 명의 방문객들로부터 나오는 관광수입이 청보리 밭에서 나오는 농업수입의 3배 이상”이라며 “농업수입과 달리 관광수입은 무궁무진한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상헌 교수는 “농업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도시 사람들의 심신을 치유하는 치유 사업으로 확장되는 등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업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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