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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TV야화]추노에서 탈출하지 못한 ‘도망자-플랜B’

입력 2010-11-03 18:53업데이트 2010-11-0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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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드라마 퇴조의 이유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도망자'
● 절반 지난 시점에 조금씩 재미 회복… 추노의 틀에서 맴돌아

"한국 드라마는 거기서 거기라 이제는 스타 중심으로 구매결정을 내립니다."

최근 아시안 TV드라마 마켓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이제 한류(韓流) 드라마가 깜짝 놀라울 정도로 새롭거나 재미있기 때문에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류스타'의 지명도 때문에 마지못해 구입한다는 얘기다.

얼마 전 끝난 MBC '장난스러운 키스'가 대표적이다. 한류스타 '김현중'을 앞세워 아시아 11개국에서 40억 원대의 판매를 기록했다고 홍보했지만 그 정도로 가치 있는 드라마인지는 국내에서조차 입증해 내지 못했다(평균 시청률 6%).

그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드라마가 수목 드라마 '도망자-플랜B' 이다.

■ 추노의 제작자들이 고스란히 재투입된 '도망자'

'도망자'는 외형만 보자면 정점에 오른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만드는 전형적인 '한류드라마'다.

우선 출연진부터 전 세계 한류 팬들의 구미를 단박에 끌어들일 만큼 호사스럽다. 아시아 최고의 스타인 가수 '비'를 전면에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일본시장에서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배우 이나영과 윤손하, 그리고 영어권 시장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다니엘 헤니까지 끌어들였다.

무대도 한국이란 좁은 틀에서 벗어나 마카오 홍콩 일본 등 적극적인 해외 로케이션을 통해 이국적인 풍경을 맘껏 담아냈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제작진이다. 국민 드라마 '추노'를 히트시킨 곽정환 감독과 천성일 작가에게 거의 전권을 주었고, 추노에 등장한 실력파 배우들을 고스란히 엑스트라와 카메오로 출연시켜 국내 팬들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놓았다.

이제는 수목드라마 경쟁에서 '대물' 시청률의 반 토막 수준으로 밀리고 있는 '도망자'이지만 시작 전에는 대물보다 더 주목받았다. 현대자동차를 포함해 국내 유수 대기업체들까지 도망자에 간접광고를 하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

하지만 20%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가 전반이 끝나고 후반부로 접어든 지금은 10% 주위를 오락가락하며 범작으로 내려앉았다. 시청률만으로 드라마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높은 기대치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성적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① 해외 로케를 위한 로케


"2010 범아시아 프로젝트"(도망자 제작진) vs "어수선한 자막의 조합"(시청자)

'도망자' 전반부는 일본, 중국, 필리핀, 홍콩, 마카오 등 5개국 7개 도시에서 촬영된 글로벌 프로젝트다.

아시아 넘버원 스타 '비'가 홍콩과 마카오의 유명 빌딩과 시장을 배경으로 줄기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멋진 그림이다. 드라마 수출에도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요소다.
KBS 미니시리즈 '도망자 Plan.B' 해외 5개국 7개 도시 로케이션을 통해 볼거리를 늘렸지만 캐릭터 설정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사진=KBS)

그러나 이국적인 배경을 통해 멋진 그림으로 승부한다는 해외로케의 장점은 '짧은 촬영시간' '높은 제작비용' '통제의 어려움' 같은 단점을 상쇄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도망자는 입증했다. 특히 1회부터 6회까지 해외 로케 부분이 집중적으로 소개된 대목에서 배우들의 호흡이 흐트러지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했다.

게다가 최신 서체로 드라마 하단부를 장식한 '영어/중국어/일본어' 자막도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다. 지나치게 혼란스러운데다가 한국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리얼리티마저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②정리가 덜 된 캐릭터 설정과 미스캐스팅 논란

"다니엘 헤니와 이나영의 팔색조 연기"(제작진) vs "완벽한 미스캐스팅"(시청자)

가수 비(지우)의 능글맞은 연기는 초반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비난의 화살은 악역을 맡은 '다니엘 헤니(카이)'와 비련의 여주인공 '이나영(진이)'에게 집중된다.

다니엘 헤니의 연기는 이전에도 계속 지적됐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어권 출신이어서 드라마가 '글로벌'하게 보이도록 도와주리라 기대했지만 사실상 극의 흐름을 깨뜨리는 주범으로 평가받는다.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는 연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없다는 시청자들이 많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도망자’의 이나영. 그러나 곽정환-천성일 콤비의 여주인공은 언제나 답답한 인상을 풍긴다(사진=KBS)

최고의 연기파 배우이자 신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 배우 이나영은 애당초 '곽정환-천성일'라인이 구상한 '진이'라는 캐릭터와 조화를 이루기 힘들었다는 평가다. 이들 두 제작진의 여성 캐릭터는 남성들의 속도감과는 정반대로 수동적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현실감이 부족해 '답답한 캐릭터' 논란을 낳았던 '추노'의 여주인공 이다해를 떠올리면 된다. 개성이 강하고 생각 많은 캐릭터로 각광받아온 이나영이 진이란 캐릭터에 동화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깐죽대는' 비 '비밀스러운' 이나영 '어색한' 다니엘 헤니가 한데 어우러진 장면에서 시청자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③추노에서 엿보이는 기시감

"추노의 제작진이 그대로 뭉쳤다"(제작진) vs "추노2를 찍은 것 같다"(시청자)

감초 연기의 달인 성동일이 '나까무라 황'으로, 공형진이 '장사부'로, GOD 출신 데니안이 경찰팀장으로 등장할 때부터 이미 도망자는 추노를 모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추노의 주연급인 이다해, 이종혁, 오지호, 한정수도 그대로 까메오로 등장해 제작진과의 끈끈한 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성공작인 추노를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점은 오히려 독이 됐다.

무엇보다 도망자의 스토리텔링 구조가 추노와 지나치게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정확한 음모와 사건의 배후를 모른 채 무작정 쫓기며 전반부를 마무리한 지우와 진이의 현실이 그렇고, 이를 뒤쫓는 경찰과 탐정 캐릭터 설정마저 노비를 좇는 추노패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사찰 내부에서의 결투 장면, 감초 조연들의 뜬금없는 개그 대사까지 추노와 흡사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옷만 정장으로 갈아입은 추노2를 보는 것 같다"는 시청자들의 평가를 허투로 들을 일이 아니다.

추노로 대성공을 거둔 제작진이 불과 1년 만에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자가 복제만으로 전작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약점 노출

이 밖에도 도망자가 안고 있는 취약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지나치게 한류스타만 앞세운 나머지 경륜 있는 중견 연기자가 없다", "대본을 중간에 다 바꿨는지 개연성마저 떨어진다", "여전히 잔인하고 폭력이 지나치다"고 불평을 토해낸다. 특히 이유도 모르고 무작정 쫓고 쫓기는 줄거리에 대한 비판은 게시판을 가장 뜨겁게 달군 논란거리다.
KBS 미니시리즈 \'도망자 Plan.B\' 한류드라마의 성공방정식을 구태의연하게 답습한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제공=KBS

사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이 같은 내적인 문제보다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 정도로 지독하게 악재에 시달린 측면이 없지 않다. 주연인 '비'가 연기 외적인 측면에서 고된 성장통을 앓고 있고,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인 윤손하(황미진)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현재 10회를 넘긴 '도망자'는 서서히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공개하며 정상 궤도를 되찾고 있다. 시청률도 지난주 13%를 회복하며 대물을 뒤쫓고 있다.

추노는 전반부 10회에서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 추노와 반대로 전반에 잃은 점수를 후반부에서 만회할 수 있을까. 이것이 도망자의 관전 포인트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오·감·만·족 O₂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news.donga.com/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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