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들리는 정체 모를 기계음… “생활소음 아니라 해결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6일 2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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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센터에 도움 요청해도
“생활소음 아니면 대응할 수 없어”
민원 10건 중 7건은 전화상담 그쳐
“지원대상 범위 확대해야” 목소리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경기 과천시에 있는 유모 씨(88)의 아파트에선 3년여 전부터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14층 아파트의 13층에 거주하는 유 씨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새벽까지 소음이 지속되면서 급성 이명 진단까지 받았다. 유 씨는 윗집을 의심했지만 소음의 원인은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유 씨는 2021년 1월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전문기관인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유 씨는 “센터 측은 생활소음이 아니라 해결해줄 수 없다며 전화상담만 한 채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웃사이센터 관계자는 “쇠가 부딛히는 소리라고 해서 생활소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민원 건수가 워낙 많아 기준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답답한 마음에 유 씨는 지난해 8월 민간소음 측정업체를 통해 정밀 소음 감정을 받았다. 그 결과 정부가 정한 층간소음 기준 48dB(데시벨)을 초과하는 60dB에 해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 씨는 “윗집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 10건 중 7건은 전화상담으로 끝
최근 층간소음에서 비롯된 갈등이 곳곳에서 늘어나는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신련)은 6일 최근 3년간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 2만7773건 대부분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실련에 따르면 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크게 전화상담과 방문상담, 현장 진단 및 소음 측정 등 3가지로 처리된다. 그런데 2020년 4월부터 올 4월까지 3년 동안 접수된 민원신청 중에서 실제 소음 측정까지 이뤄진 건 1032건(3.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방문 상담도 2699건(9.7%)에 불과하다. 경실련 관계자는 “접수된 민원 10건 중 7건은 전화상담 단계에서 종료되고 2건 안팎만 현장에서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웃사이센터가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크게 늘고 있다. 경실련에 따르면 층간소음에서 비롯된 살인, 폭력 등 5대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가 됐다. 경실련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기간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 민원이 증가했고 그 중 일부가 강력범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1년 전남 여수시의 한 아파트에선 30대 남성이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윗집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 “층간소음 지원 대상 범위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층간소음 지원 대상과 범위를 확대해야 피해자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규수 소음진동피해예방시민모임 대표는 “센터 측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층간소음의 종류를 생활소음으로 한정하고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례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현재 층간소음에는 뛰거나 걸을 때 생기는 직접 충격 소음과 텔레비전 소리 등 공기전달 소음만 포함되고 배수로 인한 소음이나 청소기 소음, 사람 말소리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각에선 최근 시공한 주택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잘못 시공한 회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란 주장도 나온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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