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대법원장 잘못 뽑으면…”이 가짜뉴스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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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사법부(司法部) 인사로 ‘남자 추미애’임을 재차 입증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1, 2심 유죄를 선고한 재판장들을 이례적으로 이동시키는 식이다. 이런 노골적 인사를 김명수 혼자 했을 리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

대통령법무비서관이 그가 초대회장을 맡았던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이다. 이번 인사에서 정치적 ‘냄새’가 나는 이유다. 이 연구회는 자칭 진보성향 판사들 단체인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되고 재탄생했다. 2017년 8월 김명수에게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을 전화로 알려준 전임 법무비서관도 같은 단체 출신이었다.

● 나라가 망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3권 분립의 한 축이어야 할 사법부(司法府) 수장이 청와대와 정치적, 이념적으로 너무 가깝다는 우려가 그때 벌써 나왔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선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4만5000건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는데 단 한 건도 정부에 거슬리는 판결을 내놓지 않았다”며 개탄했다. “(대통령의) 사법부 장악이 베네수엘라 몰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거다. 당 대변인은 “대법원장 한 명 잘못 뽑으면 베네수엘라처럼 망할 수 있다”는 논평까지 내놨다.

이 논평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팩트체크’에 ‘전혀 사실 아님’으로 게시돼 있다(http://factcheck.snu.ac.kr/v2/facts/254). “베네수엘라 위기의 주요 원인은 유가 하락이고, 정부의 경제개혁 실패, 부정부패와 포퓰리즘도 국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며 국가위기에 대법원이 일조를 했을 수는 있지만 주원인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렇게 치면 “대통령 잘못 뽑으면 나라 망한다”고 했다간 당장 가짜뉴스로 찍힐 판이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 캡쳐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 캡쳐


논평기사 검증을 서울대가 직접 한 건 아니다. 인터넷매체인 뉴스톱이 “가장 중요한 것은 김명수 후보자가 과거 정권과 결탁했다는, 그리고 앞으로 결탁할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거짓’ 판정을 내렸고 이 팩트체크를 서울대가 정보서비스 했다.

● 인터넷 수다까지 샅샅이 검열될 판

지금 다시 팩트체크를 할 경우 뉴스톱은, 그리고 서울대는 같은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김명수의 법관 인사, 대편향적 대법원 판결, 탄핵을 둘러싼 녹취록 발언 등을 뜯어보면 영락없이 베네수엘라 대법원장을 따라가는 형국이어서다.

즉, 현상을 거죽만 전달하는 보도가 아니고는 팩트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헌법에 규정해 놓고 있다.

집권세력은 가짜뉴스 유포를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다스릴 태세다. 기존 언론은 물론 우파가 많이 활약하는 유튜브에 1인 미디어까지 포함된다. 대한민국 하늘 아래 인터넷을 거의 샅샅이 검열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물론 집권당에선 “법원이 가짜뉴스라고 판결한 보도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한다”고 너그러운 척 밝혔다. 하지만 김명수가 법원 인사를 통해 “재판 똑바로 하라”는 메시지를 날린 마당에 어떤 간 큰 판사가 정권을 거스르는 판결을 하겠나. 결국 김명수의 사법부를 이용해 정권 비위에 안 맞으면 가짜뉴스로 처벌하겠다는 언론 개악(改惡)이요, 산 입에 재갈 물리는 인권탄압이 전개될 판이다.

● ‘노무현 언론법 위헌’도 따라할 텐가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 시절 모셨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언론에 불타는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주류언론에 대해 강한 피해감을 지녔는데 취임 1년도 안 돼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신문사가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당시 동아일보에서 “여권이 동아 조선을 과녁으로 삼은 데는 ‘전략적’ 포석이 가미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권이 위기 때마다 활용해온 ‘표적 설정→지지세력 총결집→정면 돌파’의 수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라고 기사로 대응한 기자가 윤영찬이었다. 그랬던 그가 집권당 의원이 되어 징벌적 손해배상제 언론법을 발의했다. 비극이다.

노 정권이 주류신문의 목줄을 죄기 위해 만든 신문법은 2006년 헌법재판소에서 핵심 조항(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 위헌 결정을 받았다. 그래도 그때는 헌법정신에 투철한 헌재가 있어 언론자유를 지켰고, 정권도 교체할 수 있었다. 독재 정권이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를 장악할 경우, 어떤 저항도 먹히지 않는 참극이 닥칠 수 있다. 다음에 쓸 베네수엘라가 바로 그런 경우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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