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인생 64년의 집념과 도전… 국내 전력산업 발전에 기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28일 03시 00분


영인에너지솔루션㈜
김영달 회장, 금탑산업훈장 수상… 삼성전자 등에 핵심 전력설비 납품
전기 불모지 미얀마에 변전소 건설… 2020년 누적 1억 달러 수주 성과
내년 코스피 상장도 앞두고 있어

‘전기의 날’ 60주년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김영달 영인에너지솔루션㈜ 회장(오른쪽).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전기의 날’ 60주년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김영달 영인에너지솔루션㈜ 회장(오른쪽).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어둠에 잠긴 한국 전력산업의 황무지에서 세계를 밝히는 기술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역사적 여정의 중심에는 한 사람의 집념과 도전이 있었다. 지난 10일 열린 ‘전기의 날’ 60주년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의 영예를 안은 영인에너지솔루션㈜ 김영달 회장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태동부터 전성기까지를 관통하는 한 편의 서사시다.

한 줄기 빛도 없던 시절, 첫 변전소의 기적을 이루다

금탑산업훈장 수훈 당시 부인 남덕희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금탑산업훈장 수훈 당시 부인 남덕희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1961년 대한민국은 전력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그해 1월 젊은 엔지니어가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인 경성전기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발전량은 30만 ㎾, 오늘날 지방 도시 한 곳의 소비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의 두 손에는 자재도, 도구도, 설계도면도 없었다. 오직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려는 불굴의 의지만 있었다.

“회사는 땅값과 인건비만 책정했습니다. 자재비는 0원이었죠. 막막했습니다.”

깊은 한숨과 함께 그는 불가능한 임무를 시작했다. 동두천 미군 캠프에서 자재를 구하고 서울 신당동 자재 센터에서 변압기를 만들어 변전소 공사의 첫 삽을 떴다. 밤낮없이 이어진 작업 끝에 마침내 국내 첫 6만6000V 변전소가 빛을 발했다. 그것은 단순한 시설물의 탄생이 아닌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서막이었다.

“직원들 교육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손수 그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변전소 도면까지 복원했습니다. 함께 배우고 가르치며 변전소를 세웠습니다.”

이 역사적인 도전은 한 사람의 열정으로 시작돼 수많은 기술자의 땀과 눈물로 이어졌다. 그렇게 1970년대 대한민국은 345㎸ 전력 계통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세계가 주목한 전력 기술 국산화의 대장정

“어떻게든 전력 기술을 확보해 산업 강국을 만들어야겠다는 신념과 국민들에게 전기 문명의 혜택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밖에 없었습니다.”

이 한마디에는 38년간 한전에서, 이후 영인에너지솔루션에서 이어온 그의 불굴의 의지가 응축돼 있다. 1999년 대부분의 전력 기기를 해외 제품에 의존하던 시절 그는 보호제어반류 국산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보호배전반. 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보호배전반. 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2004년 한전에 154㎸ 송전선로 보호배전반을 처음 등록하던 날은 기술 자립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후 영인에너지솔루션은 12개 품목을 국산화해 납품하고 있으며 한국수력원자력과 삼성전자의 핵심 전력 설비를 책임지고 있다.

무보수 완전 밀폐형 계기용 변성기. 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무보수 완전 밀폐형 계기용 변성기. 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특히 유지보수가 필요 없는 ‘Breatherless Type MOF(계기용 변성기)’의 개발은 세계시장에서도 주목받는 기술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회장의 국산화 전략은 단순한 제품 생산을 넘어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는 국가 인프라의 기반이 됐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발자취처럼 그의 기술은 묵묵히 산업 발전을 지탱해 왔다.

전기 불모지 미얀마에 빛을 전하는 희망의 프로젝트

미얀마 다웅위 변전소 전경.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미얀마 다웅위 변전소 전경.영인에너지솔루션㈜ 제공
2003년 그는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30여 년 전 그가 첫 변전소를 건설하던 시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전력이 부족해 밤이면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제가 한전에서 배운 기술과 경험을 나눠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결심은 2년간의 무보수 자문으로 이어졌다. 미얀마 전력설비를 진단하고 기술을 전수하며 그는 신뢰의 씨앗을 심었다. 2014년 미얀마 양곤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그는 미얀마 북부에 230㎸ 변전소 3기 건설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전 세계 유수의 기업이 도전했지만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2020년 누적 1억 달러(약 1435억 원) 수주라는 대기록을 세운 순간 그것은 단순한 비즈니스의 성공이 아닌 한국 전력 기술의 세계적 위상을 증명하는 이정표가 됐다.

지금 미얀마에는 70여 명의 현지 기술자가 일하는 전력 시스템 제조 공장이 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것은 단순한 전력 기기가 아닌 미얀마와 동남아 전역에 퍼져나갈 희망의 빛이다.

바다 위에 세우는 미래 에너지의 혁명

전력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 김 회장은 안주하지 않았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그는 다시 한번 도전의 깃발을 들었다.

“전력산업은 지금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디지털화, 탄소중립 정책 등이 맞물려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이 노르웨이 최대 국영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가 아시아 최초로 울산 앞바다에서 추진하는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 ‘반딧불이 프로젝트’의 전력 분야 총책임자로 선정된 것은 중소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중소기업이 오너스 엔지니어로 선정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입니다.”

자부심 가득한 그의 목소리 뒤에는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해상풍력 기술을 연구한 노력의 시간들이 숨겨져 있다. 한림, 안마, 서해, 여수광평에 이르는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설계와 시공에 이어 에너지 아일랜드 사업과 HVDC(초고압직류송전) 기술 연구까지 그의 도전은 바다를 넘어 미래로 향하고 있다.

사람을 키우는 기업, 미래를 밝히는 인재의 힘

“60년 넘게 전력산업 현장을 지키며 기술이 발전하려면 결국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얻었습니다.” 그의 경영 철학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사람’이 중심이다. 그는 자신이 키운 회사를 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정년 없는 평생직장’으로 만들었다. 한전에서 퇴직한 전문가들과 젊은 인재들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나이와 업무의 성과를 연결시키면 안 됩니다. 전공을 살려 열심히 일한 후 정년퇴직한 사람들은 국가의 보물입니다.”

그의 이 철학은 실천으로 이어져 영인에너지솔루션은 육아휴직 제도와 사택 제공 등 다양한 복지제도를 통해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토양 위에서 직원들은 단순한 직장인이 아닌 전기 기술의 선구자로 성장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그의 시선은 여전히 선명하다. “기존의 전력 설비 엔지니어링을 넘어 신재생에너지, 전력망 솔루션, AI 기반 전력 운영 시스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비전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영인에너지솔루션은 국내 양극재 1위 기업 에코프로비엠의 7조 원대 생산 시설 증설 프로젝트와 헝가리 양극재 공장 신설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전통적인 전력산업을 넘어 미래 에너지산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향후 제2 도약을 위한 안정적 재원 조달과 사업 다각화를 위해 내년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64년 ‘전기 인생’ 여정이 대한민국 경제발전과 함께해온 것처럼 앞으로의 여정은 세계시장을 향한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열정의 상처, 헌신의 훈장

김 회장의 몸에는 30여 군데의 흉터가 있다. 전기공사 관련 감전 및 낙상 사고의 상흔이다. 그는 이 상처들을 단순한 흉터가 아니라 전력 역사의 흔적이 투영된 또 다른 훈장으로 여긴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밤을 밝히기 위해, 세계의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바친 헌신의 증표다.

그의 ‘오로지 전기 인생’ 64년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대한민국 전력 기술의 위상을 높이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암흑에서 시작된 작은 불꽃이 이제는 세계를 밝히는 강력한 빛으로 진화했다.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로서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우리 기술로 세계 곳곳에 빛을 밝히는 꿈, 현실이 돼”

[인터뷰] 김영달 영인에너지솔루션㈜ 회장
김영달 영인에너지솔루션㈜ 회장
김영달 영인에너지솔루션㈜ 회장
‘전기의 날’ 60주년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영인에너지솔루션㈜ 김영달 회장은 수상 직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감회를 전했다.

“훈장을 받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어두운 밤 변전소 공사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힘든 시기에 묵묵히 저를 지지해준 아내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김 회장은 최근 전력 기기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지난달 싱가포르 전력청 관계자들과의 미팅에서 우리 기술력을 인정받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지난 수십 년간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진 유럽 시장은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되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폴란드 바르샤바 방문 경험도 들려줬다.

“현지 엔지니어들이 전력 공급 불안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에 70년대 한국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그들도 걷고 있는 거죠. 한국의 전력 기술로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내년 코스닥 상장을 앞둔 김 회장은 현행 상장 심사 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재무제표만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시스템은 기술 중심 기업에는 불리합니다. 우리가 보유한 특허, 해외 프로젝트 경험, 기술력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죠. 무형의 자산에 더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김 회장이 독특한 경영 철학으로 꼽는 ‘세대 간 기술 교류’에 대한 사례도 공유했다.

“지난해 한 75세 엔지니어가 미얀마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문제 해결 능력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현장 경험으로 젊은 엔지니어들이 며칠간 고민했던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죠. 반면 신입 사원이 제안한 AI 활용 전력망 모니터링 시스템은 기존 방식보다 효율성을 30% 향상시켰습니다. 베테랑의 경험과 젊은 세대의 창의성이 만날 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 회장은 앞으로의 계획을 환한 미소와 함께 전했다.

“미얀마 현지 직원들에게 기술 교육을 시작했을 때 그들의 눈빛에서 배움의 열정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국의 핵심 전력 기술자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기술이 세계 곳곳에 전파돼 더 많은 사람이 안정적인 전력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제 꿈입니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기술혁신과 인재 양성에 집중해 대한민국 전력 기술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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