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06주년을 앞두고 조선인들을 비하한 일제 역사지리 교과서인 일본지리를 공개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 역사지리 교과서가 94년 전에도 조선인 등 다른 민족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역사학계에선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토사학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인 심정섭 씨(82·광주 북구)는 7일 본보에 1931년 3월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일본출판사가 발행한 일본 역사지리 교과서인 일본지리 내용을 공개했다. 심 씨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06주년을 맞아 일본지리를 공개하고 평가했다.
일본지리 서문에는 내용이 평이하고 간략해 암기하기 쉬워 중학교, 여학교, 실업학교 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참고서라고 적혀 있다. 교과서 크기는 가로 13cm, 세로 19cm이며 분량은 307쪽이다.
일본지리 3편 5장(269쪽) 주민 종족 항목에는 각 민족의 특성을 적고 있다. 일본(대화) 민족은 7200만 명인데 충성심과 애국심이 높고 기상이 풍부하다고 적었다. 또 일본 민족은 결백을 중요하게 여기고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좋게 평가했다. 다만 인내심이 부족한 것이 약점이라고 주장했다.
조선 민족은 2690만 명인데 일본인과 가장 유사하다고 했다. 반면 인내심이 부족하며 저축심이 적고 낮잠, 잡담을 하는 데 시간을 허비해 빈민층으로 전락했다고 비하 평가했다. 대만 원주민인 고산족은 14만 명인데 부족끼리 싸울 때 목을 베는 풍속이 있다고 나쁜 평가를 했다. 대만 고산족은 사소한 일에도 목을 베는 괵수(馘首)라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조선은 일본에 비해 문화 수준이 낮고 서민들은 미신을 숭상한다고 비하한 내용이 담긴 교과서 일부.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일본지리 2편 11장(229쪽) 조선지방에는 한반도의 지형, 기후를 설명하면서 조선인을 또 비하했다. 조선은 일본에 비해 문화 수준이 낮고 양반들은 유교를 신봉하나 서민들은 미신을 숭상하며 한글(언문)을 사용한다고 적었다. 또 조선 남자들은 상투를 하고 검은 갓을 쓰고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평가했다.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착용하고 가옥은 초가, 흙집이 대부분이며 난방으로 온돌을 사용해 산림이 황폐화됐다고 기술했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일제 교과서가 조선을 미개한 민족으로 비하한 것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으로 최근 불거진 일본 교과서 독도 일본 고유 영토라는 억지주장 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지리 도시 항목에는 조선에서 주민 10만 명 이상의 도시는 서울(경성) 44만 명이며 5만 명 이상은 평양, 부산이 있고 10만 명 이상은 인천, 전남 목포, 광주, 원산, 개성 등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교육 항목에는 일본에는 초등학교가 약 2만5697개가 있고 조선에는 2218개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등학교는 일본이 1343개에 달했지만 조선은 43개가 전부였다. 특히 고등 교육기관은 대학은 일본이 52개교가 있는 반면 조선은 경성제국(서울)대학 1개교뿐으로 차별적 교육 정책을 엿볼 수 있다. 심 씨는 “일제는 일본지리 등을 통해 군국주의를 미화하고 조선인을 미개인으로 비하했다. 이런 시각이 태평양전쟁 등에서 조선 사람들을 강제 징병, 징용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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