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냄새 찌든 김민기 사무실엔 빈 책상만… 재정난 보여주듯 극장 천장 곳곳 누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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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학전’ 폐관 두달]
문닫은 학전 소극장 가보니

8일로 폐관 55일을 맞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학전 소극장 건물 4층, 김민기 학전 대표가 사용하던 집무실에는 묵은 담배 냄새가 가득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8일로 폐관 55일을 맞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학전 소극장 건물 4층, 김민기 학전 대표가 사용하던 집무실에는 묵은 담배 냄새가 가득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묵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무실을 가득 채웠던 공연 자료와 참고 서적들이 모두 빠져 공간은 휑했다. 20년 된 낡은 냉난방기와 빈 책상, 의자 2개만 우두커니 서 있다.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4층에 있는 김민기의 사무실은 빠르게 을씨년스러워져 있었다.

김민기가 이끌어온 소극장 학전이 3월 15일 폐관된 이후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7일 저녁 건물 관계자의 협조로 학전의 출입문을 다시 열어 볼 수 있었다. 극장 지하의 공연장에 들어서자 습한 기운과 함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디선가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천장을 올려다 보니 조명 사이사이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바닥엔 대야와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심각한 재정난을 겪던 학전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배우도, 관객도, 그리고 연출자인 김민기도 떠난 텅 빈 공연장. 아동극이 올려졌던 이곳에 퍼졌던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어느덧 먼 옛날 얘기가 된 듯했다. 극장 외벽에 튼튼하게 내걸렸던 ‘학전’이란 현판도 형체 없이 사라졌다.

김민기가 걸었던 곳을 따라 근처의 한 청국장 집으로 길을 잡았다. 김민기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오후 5시에 혼자 이곳을 찾았다. 봄이고 가을이고 허름한 야외 테이블에 앉아 김치청국장을 시켰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몇 시간이고 느긋이 사색을 즐겼다고. 주인 김정득 씨는 “지난해 말 입원하기 사나흘 전에 찾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매일 보던 모습을 보지 못하니 많이 그립다”고 했다. 학전 식구들은 이 식당에서 장부를 달아 놓고 자유롭게 먹었다. ‘적어도 배는 곯지 않아야 한다’는 김민기식의 직원 복지 정책이었다.

대학로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인 학림다방 단골 손님 가운데에도 김민기가 있다. 이충열 학림다방 대표는 김민기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형님(김민기) 음반을 틀었다가 엄청 혼났었다”고 했다. 그는 “형님의 부탁으로 보도용 공연 사진을 제가 찍어왔다”면서 “학전의 공연 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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