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심 미술史가 놓친 작가들 한자리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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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주제로
베니스 비엔날레 7개월 대장정
20세기 유행 다양한 표현방식 망라
韓 현대미술가 이강승-김윤신 출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을 함축해 보여주는 클레르 퐁텐의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위 문구)와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 마르코 초르차넬로·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을 함축해 보여주는 클레르 퐁텐의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위 문구)와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 마르코 초르차넬로·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오래된 조선소와 무기 공장을 개조한 전시 공간인 아르세날레.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인 이곳 입구에 들어서자 낡은 그물로 된 봇짐을 짊어진 우주인이 서 있다. 우주 탐사는 첨단 문명을 상징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과 들고 있는 잡동사니는 오래되고 낡았다. 고도로 발달한 줄 알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결점을 가진 인류의 ‘허름한 문명’을 상징한 이 작품은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이다.

우주인의 머리 위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인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 Foreigners Everywhere)’라는 글귀가 네온사인으로 걸려 있다. 이들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명확히 보여줬다. 인간의 문명이 여전히 허점투성이인 것처럼 “우리는 아직 세계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이자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이 17일(현지 시간)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11월 24일까지 7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1895년 시작해 60회째인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는 브라질 큐레이터 아드리아누 페드로자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이번 전시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미술사가 놓친 작가들을 적극 조명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특히 자르디니 전시장에서는 20세기 유행했던 입체파, 표현주의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구사한 유럽 밖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원근법이나 해부학은 가볍게 무시한 선주민 예술부터 터부시됐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퀴어 예술 등 규칙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과 이야기에 집중한 작품들이 관객을 맞이했다.

‘초상화’ 섹션에서는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8∼1949년)과 장우성의 ‘아틀리에’(1943년)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비롯한 전 세계 작품과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이쾌대의 작품을 선정한 큐레이터 아디나 메이는 “전통 두루마기와 서양의 페도라를 쓰고 유화 물감과 동양화 붓을 든 작가는 한국과 한국 예술의 미래를 상상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로는 이강승(46)과 김윤신(89)이 출품했다. 두 작가는 각각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비중 있게 작품이 다뤄졌다. 이강승은 드로잉, 자수, 깃털 등 연약한 오브제를 시적으로 배치해 퀴어 문화 역사의 주요한 인물들을 서정적으로 조명했다.

특히 신작은 주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양피지 그림, 금실 자수, 미국 수어 알파벳으로 기록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이강승 작가는 “퀴어이자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주제가 많은 공감이 된다”며 “우리 모두가 지구상에 잠시 왔다 떠나는 이방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기톱으로 작업하는 할머니 조각가’로 불리는 김윤신의 작업물 중에선 지난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선보였던 나무와 돌 조각 작품들이 전시됐다. 페드로자는 김윤신에 대해 “한국과 아르헨티나 조각 예술의 선구적인 작가”라며 “(아르헨티나 이주 등)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거주했던 경험이 작품에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베니스 비엔날레#현대미술가#이강승#김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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