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고 험한 것이 통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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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11일 만에 600만 관객, 비결은
오컬트물 한계 넘은 이례적 흥행… 탄탄한 연기-흥미로운 소재 큰몫
쇠침설 항일소재로 애국심 자극… 영화속 ‘이스터 에그’ 찾기도 재미

영화 ‘파묘’가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넘겼다. ‘파묘’는 한 집안의 묫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담은 
오컬트물이다. 왼쪽부터 법사 봉길(이도현), 무당 화림(김고은),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가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넘겼다. ‘파묘’는 한 집안의 묫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담은 오컬트물이다. 왼쪽부터 법사 봉길(이도현), 무당 화림(김고은),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쇼박스 제공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결합한 오컬트 영화 ‘파묘’의 흥행세가 무섭다. 개봉 11일 만인 3일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600만 관객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흥행 영화 2위에 오른 ‘극한직업’(2019년)과 같은 속도다. 그동안 1000만 관객이 넘은 한국 오컬트물은 없었다는 점에서 파묘가 그 주인공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오컬트물로 이례적 흥행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파묘’는 4일까지 624만 명이 봤다. 한 집안의 묫자리와 관련된 기이한 사건을 다룬 ‘파묘’는 ‘검은 사제들’(2015년) ‘사바하’(2019년)를 만든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오컬트 영화다. 마니아층만 본다는 오컬트물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례적 흥행이다.

일등 공신은 믿고 보는 배우진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베테랑 배우 최민식과 유해진, 뜨는 별 김고은과 이도현이 한데 모여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들이 구축한 개성 강한 4명의 캐릭터가 오컬트 영화인데도 대중성을 살렸다는 평가다. 극 중 최민식은 40년 경력의 실력파 풍수사 상덕 역을, 유해진은 전직 대통령들을 염한 유명한 장의사 영근 역을 맡았다. 김고은은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굿을 하는 ‘힙한’ 무당 화림을, 이도현은 온몸에 문신을 한 채 근육 운동에 매진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법사 봉길을 연기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평범한 서민들이면서도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 함께 악을 물리친다. 오컬트물이라는 외피를 입었지만 속살은 ‘서민 히어로 영화’에 가깝다. 그 덕에 마니아층만 즐기는 장르 영화가 아닌 관객 저변을 크게 넓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영화의 소재 역시 흥행에 큰 몫을 했다. ‘파묘’는 풍수지리와 굿, 전통 장례 절차 등을 주요 소재로 했다. 아기 이름을 지을 때면 작명소를 이용하고, 묫자리에 풍수를 따지는 한국에서 관객들이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소재다. 구마(驅魔) 의식이나 이단 종교 같은 기존 오컬트물 단골 소재보다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누레온나, 오니 등 낯선 일본 요괴를 등장시켜 흥미를 돋웠다. 영화 후반부가 일제시대의 ‘쇠침설’을 활용한 항일 영화로 흐르며 애국심을 자극한 부분도 대중성 확보에 도움이 됐다.

● 팬데믹 이후 달라진 흥행공식


눈여겨볼 부분은 ‘파묘’가 팬데믹 이후 완전히 달라진 극장가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극장가 비수기인 지난달 22일 개봉했다. 팬데믹 이전까지 1000만 영화는 설·추석 연휴나 여름, 연말 등 소위 극장가 성수기에 탄생했다. 역대 한국 흥행 1위인 ‘명량’(2014년)은 여름 휴가 기간, ‘극한직업’은 설 연휴, 3위인 ‘신과 함께: 죄와 벌’(2017년)은 크리스마스 연휴에 개봉해 가족 관객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파묘’는 설 연휴를 보내고 2월 말이라는 전통적인 비수기에 개봉해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 역시 극장가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했다.

또 개봉 첫 주 주말 관객 수(약 196만 명)보다 둘째 주 주말 관객 수(약 233만 명)가 20% 늘었다. 팬데믹 이전 극장가에서는 개봉 첫 주 주말 관객 수를 1000만 영화의 바로미터로 여겼다. 통상 첫 주말 관객 수가 가장 많고 이후 관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첫 주 성적이 중요하다. 하지만 ‘파묘’는 둘째 주 주말에 이례적으로 관객이 큰 폭으로 늘었다.

이는 팬데믹 이후 관람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대중화되면서 관객들이 극장에 가서 볼 영화를 고르는 눈이 까다로워졌다. 대작이라고 해도 개봉 직후에 보지 않고 평가를 지켜본 뒤에 반응이 좋으면 극장으로 간다. ‘입소문’이 흥행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파묘도 영화 속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 찾기 열풍이 불어 입소문 타기에 성공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상덕, 화림, 영근, 봉길은 모두 실제 독립운동가들 이름이다. 등장인물들 차량 번호는 삼일절(0301) 광복절(0815) 광복연도(1945)다. 온라인에선 영화 속 숨겨진 의미를 찾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데믹 이후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제1 이유는 ‘재미’”라며 “재밌으면서도 영화를 보고 난 뒤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영화가 흥행하는데 파묘가 그 지점을 잘 공략했다”고 분석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파묘#600만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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