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정당 방지법’ 만들자던 野의원은 다 어디갔나[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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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하면서 의원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이 대표가 제안한 대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및 위성정당 창당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동아일보 DB
의원들께서 이재명 대표의 결정 사항에 만장일치로 뜻을 같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일 의원총회를 열고 올해 총선에서 현행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자는 이재명 대표의 제안에 ‘만장일치’로 뜻을 모았습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전하며 “통합 비례정당을 빠른 시일 내 만들어 윤석열 정부 심판에 함께하는 모든 정당, 정치단체들과 뜻을 모아가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오늘 (의총에서) 비례정당을 만드는 데 반대하시는 분은 없었다”며 “당 대표도 ‘위성정당으로 볼 수 있다’는 측면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4년 전 민주당이 했던 위성정당과 이번 통합비례정당은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21대 총선 때는 민주당 중심으로 위성정당이 꾸려진 탓에 다른 소수정당들이 빠졌지만, 이번에는 제3당 중 주요 정당들과 함께 통합비례정당을 구성할 계획이라 그냥 위성정당과는 다른 ‘준(準)위성정당’이라는 거죠.

어렵게 들리지만, 그냥 말장난식 변명입니다. 위성정당이든 준위성정당이든, 결국 소수정당 몫으로 양보해뒀던 비례 의석을 다시 최대한 뺏어오기 위해 띄우는 비례대표용 정당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같은 속내를 모를 리 없는 민주당 의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줬다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위성정당은 괴뢰 정당”이라더니
언제부터 민주당이 이렇게 의견이 서로 일치되는 정당이었던 걸까요.

2월 6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이재명 대표. 이 대표는 이날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은) 굳이 표현하자면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DB
전날 “(상대가) 칼을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며 국민의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던 이 대표는 이날도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여당이 대놓고 위성정당을 만들기로 공언하고 실제 만들었다. 민주당 입장에선 (상대가) 반칙하는 상황에서 대응을 안 하면 국민 표심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굳이 표현하자면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갈지는 실무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겠지만, 이 자리에서 의원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논쟁을 격렬하게 하되 (당에서) 결정하면 부족함이 있더라도 흔쾌히 따른다(는 것)”라고 못 박았습니다. 당이 내리는 결론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알아서 조용히 따르라는 겁니다. 속된 말로 “닥치고 까라면 까라”는 거죠.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왼쪽에서 6번째) 등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11월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성정당 방지법’의 당론 채택을 촉구하는 모습. 뉴스1
이날 의총에는 이탄희, 김상희, 김두관, 권인숙 의원 등도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거듭 ‘위성정당 방지법’의 당론 채택을 주장해 온 의원들입니다.

초선인 이탄희 의원은 지난해 11월 15일 같은 당 의원 30여 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께 약속했던 정치개혁을 이루려면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당시 회견에는 김한규, 김두관, 민형배, 이용빈, 윤준병, 강민정, 김상희, 이학영 의원 등도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실효성 있는 (위성정당 방지) 법안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비겁한 변명만 내고 있다”며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달라야 한다. 혁신은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기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의 대선 공약이었던 ‘위성정당 방지법을 전제로 한 연동형 선거제 도입을 통한 다당제 구현’을 지키라는 거죠.

이탄희 의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학자 슈가트는 위성정당을 ‘퍼펫(Puppet·꼭두각시) 정당’이라 했다. 괴뢰정당인 것”이라며 “위성정당이란 말도 너무 봐준 것 같다. (위성정당 방지법을 통해) 괴뢰정당을 만들지 말자”고까지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 75명이 공동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이들은 “위성정당으로 인해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 취지가 심하게 훼손돼 보완이 절실하다”며 위성정당 출현을 방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홈페이지 캡처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 75명이 공동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이들은 “위성정당으로 인해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 취지가 심하게 훼손돼 보완이 절실하다”며 위성정당 출현을 방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홈페이지 캡처
이어 같은 달 28일엔 민주당 의원 75명이 위성정당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개정안은 ①총선에 참여하는 모든 정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를 동시에 내야 하며 ②지역구 후보 숫자의 20% 이상 비율을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하도록 의무화하도록 했습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부의장 출신 김상희 의원은 “준연동형 비례제로 소수정당 의석 확보가 유리해질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른바 ‘위성정당’을 통해 제도 도입의 취지가 심하게 훼손돼 보완이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공천 앞두고는 ‘만장일치’로 위성정당 띄우기
이렇게나 위성정당의 문제점과 폐해를 조목조목 잘 알고 계신 분들이 왜 이제 와선 이 대표의 위성정당 창당 발표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인 걸까요. 지난해 11월에는 ‘차라리 백의종군하겠다’고 외쳤을 정도로 반대해야 했던 위성정당이 갑자기 3개월 만에 정당해진 건 아닐 텐데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 11월과 달리 지금은 완전히 총선 공천 시즌 아니냐. 누가 이제 와서 공천권을 쥔 당 대표의 뜻을 굳이 거스르려 하겠냐”고 했습니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이래서 작년부터 이 대표가 선거제 결정을 최대한 늦출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이 대표로선 어떤 선택을 해도 욕을 먹을 테니 최대한 시간이라도 끌어서 당의 분열과 이탈을 막으려 할 것으로 봤다”고 하더군요. 들끓는 당내 반발도 총선 공천 시즌이 되면 알아서 사그라들 것이란 계산인 거죠.

아무리 당 지도부가 선거제 관련 당론 결정 권한을 이 대표에게 위임했다 하더라도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입니다. 각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마지막 선거제 의총에선 끝까지 아닌 건 아니라고 했어야 마땅합니다. 설령 변화까지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그래야 역사의 한 기록으로 남기고, 추후 이번 총선 과정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위성정당의 폐해를 새길 수 있었을 겁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 의총의 만장일치 의결을 “코미디”라고 부르며 “민주적인 정당이 맞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북한에서도 99점 몇퍼센트 나왔던데, 100%라니 북한인가”라며 “만장일치로 할 걸 지금까지 왜 이렇게 지지고 볶고 했는지 모르겠다”라고도 했더군요. ‘닥치고 까라면 까’라는 이재명식 지침을 그대로 따른 민주당 의원들로선 이 말이 상당히 아프게 들릴 것 같습니다. 절대 위성정당은 안된다던 민주당 의원들은 다 어디로 간 겁니까.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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