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번 넘게 선 그어야 작품 한 점… 펜화 한획 한획 그리는 과정이 수행”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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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화로 읽는 사찰’ 펴낸 김유식 작가
“선들 중첩해 세월의 무게감 표현
절의 아름다움 알릴 계기 됐으면”

김유식 작가는 “세밀한 눈으로 보면 국보, 보물이 아니더라도 우리 전통 사찰에는 대단한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품이 가득하다”며 “제 그림이 잘 몰랐던 절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유식 작가 제공
김유식 작가는 “세밀한 눈으로 보면 국보, 보물이 아니더라도 우리 전통 사찰에는 대단한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품이 가득하다”며 “제 그림이 잘 몰랐던 절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유식 작가 제공
“펜화 한 점을 그리려면 선을 수십만 번 이상 그어야 해요. 고찰(古刹)의 깊은 느낌을 주는 데도 제격이지만, 한 획 한 획 그으며 완성해 가는 과정이 모두 수행이지요.”

최근 ‘펜화로 읽는 사찰 1, 2’(불교시대사)를 출간한 김유식 작가(60)는 12일 인터뷰에서 0.05mm의 가는 펜으로 절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펜화로 읽는 사찰’은 펜으로 그린 전국 전통 사찰 53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엮은 내용이다.

―펜으로 사찰을 그리는 이유가 있습니까.


“수백 년 된 절에는 오랫동안 풍파를 이겨낸 세월의 깊이, 무게가 있어요. 또 기둥에도 아주 세밀한 잔금이 수도 없이 많고요. 펜으로 선을 긋고, 그 위에 또 긋고 하는 식으로 중첩하다 보면 선들이 두께를 만들어서 세월의 무게감, 고풍스러움을 표현하기가 좋지요. 고찰의 곳곳에 보이는 잔금도 붓이나 다른 도구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고요. 그런데 같은 펜으로 현대식 건물을 그리면 절을 그릴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나요. 마치 설계도처럼 보이거든요. 참 신기하죠.”

―작업 과정이 수행의 일부라고요.

“보통 한 점(53×40cm)을 그리는 데 하루 8시간씩 열흘 이상 걸리니까요. 붓으로 칠하면 몇 번이면 될 공간도 펜으로는 수십만 번을 그어야 하지요. 또 절을 제대로 그리려다 보니 그 안에 담긴 역사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등도 취재하고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불교 신자여서이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과정이 일종의 수행 과정처럼 되더군요.”

―함께 소개한 사찰에 숨겨진 이야기도 꽤 눈길을 끕니다.

“세밀한 도구로 그리다 보니 곳곳을 세밀하게 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인가 봐요. 인천 강화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 네 귀퉁이에는 벌거벗은 여인 조각상이 쪼그리고 앉아 처마를 힘겹게 떠받들고 있어요. 절에서 그런 조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절을 만든 도편수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여인에게 평생 고통받으라고 몰래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죠.”

―큰절보다 말사(末寺)의 아름다움에 더 큰 비중을 뒀더군요.

“경기 파주 고령산 자락에 있는 보광사는 경기 남양주 봉선사 말사인데 대웅보전의 건축미도 대단하지만, 3m 가까이 되는 목어(木魚)가 일품이지요. 다른 곳에서 순회 전시를 할 정도니까요. 목어는 보통 종각에 달려 있는데, 만세루 툇마루에 달린 것도 이채롭고요. 대웅보전 편액은 영조대왕 친필이고, 관음전 뒤편 어실각은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으로 그려졌던 숙빈 최씨, 즉 영조대왕 모친의 위패를 모신 곳이에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숨은 매력이 많은 말사가 많이 있어요. 제 그림이 사람들에게 잘 몰랐던 절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펜화#사찰#김유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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