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택해야 하나, ‘고요함‘을 택해야 하나[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1일 15시 00분


코멘트

백년사진 no. 40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사진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이번 주 제가 고른 사진은 1923년 10월 21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입니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고 그 옆에서 피아노 반주자가 혼신의 힘으로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 서울에서 바이올린 연주회가 열렸던 모양입니다. 사진 설명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만장을 감동시킨 계군의 묘기 . 19일 밤 경성 공회당에서 열린, 계정식 군의 연주회는 매우 성황을 이루었다. 출연한 이는 일류 음악가 이었으나 계군의 묘기는 그 중에서도 우뚝히 뛰어나서 고읍게 고요하게 부드럽게 풀리는 실끝 같이 쏟아지는 폭포같이 굴러나오는 음률에는 만장의 청중이 극도에 감동되야 최후의 한곡조를 연구하고 난 때에는 잠시 동안 장내에 청중도 없고 연주자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사진은 계군과 그 반주 풋스양).

▶ 공연장을 찾은 청중을 감동시킨 바이올린 연주를 ‘묘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폭포처럼 펼쳐지는 바이올린 선율에 관중들이 극도로 감동해 청중과 연주가가 몰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식으로 현장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 이 사진을 보면서 드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저 상황은 실제 공연 모습까 아니면 연습 시간에 양해를 구해 찍은 사진일까 하는 점입니다. 돈을 내고 들어온 신사숙녀들이 무대 아래에서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시간에 사진기자가 무대 위에 올라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게 가능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 사진은 망원렌즈로 촬영한 게 아니니 사진가가 피사체 바로 옆에서 촬영해야 했을텐데 그러면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에는 ‘사일런스’ 기능이 있어서 소리가 아주 작게 나도록 설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셔터막이 열렸다 내리는 소리는 침묵 속에서는 크게 들립니다. 백 년 전 카메라는 지금보다 더 묵직한 셔터 소리가 났으니 아마 실제 공연 중에 촬영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겁니다.
지금도 예술의전당이나 연극무대의 공연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리허설 장면을 촬영하거나 방음시설이 된 조정실 유리창 너머로 찍습니다.

▶최근에 출시되고 있는 전문가용 미러리스 카메라에는 드디어 완벽한 ‘사일런스’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셔터막이 없이 전자신호로만 사진을 찍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기술 발전입니다.
지금의 미러리스 카메라와 망원렌즈가 있다면 사진 속 저 장면은 멀리서 자연스럽게 포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소음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사진기자들의 일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과거에는 접근할 수 없던 현장으로 갈 수 있게 되었고 과거에는 촬영할 수 없던 순간을 촬영할 수도 있게 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소리에 민감한 선수들이 벌이는 바둑 대회나 골프 티샷 순간을 마음껏 촬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소음의 미러리스 카메라가 대중화되면 혹시 ‘몰래 카메라’가 일상화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몰래 카메라는 전문가용 미러리스 카메라 출시와 상관없이 시작되어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진기자들이 갖고 다니는 카메라는 크기가 커서 눈에 확실하게 띄기 때문에 몰래 카메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오늘은 100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공연 사진을 보면서, 이제 셔터 소리 때문에 못 가는 현장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