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에서 조선시대 민가 정원을 만나다[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8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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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고은리 안마당으로 향하는 협문가에 핀 능소화. 국립수목원 제공

조선시대에는 민가(民家)에서도 정원을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민가는 궁궐, 관아, 사찰, 향교와 같은 공공건축물이 아닌 사적인 건축물입니다. 상류층 양반집의 정원이 있는가 하면, 의원이나 역관과 같은 중인층의 주택도 있고, 일반 서민들의 주택에서도 조그만 마당이나 뒤뜰이라도 있으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뒷산이 아늑하게 감싸 안은 곳에 터를 잡고, 담장을 둘러 내외부의 공간을 구분합니다. 집은 건물이 지어진 채와 마당으로 이루어지죠. 마당은 될 수 있으면 밝게 비워두어 다양한 생활공간으로 활용하고, 담장 밑으로는 아름다운 나무와 꽃을 심고 돌과 연못 등의 점경물을 두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삶이 깃든 자리, 민가정원을 만나다’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청 앞마당.
‘삶이 깃든 자리, 민가정원을 만나다’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청 앞마당.

국립수목원은 9월18일부터 10월3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청에서 한국 민가정원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총망라한 전시회를 연다고 합니다. ‘삶이 깃든 자리, 민가정원을 만나다’는 전시회입니다. 선조들이 민가정원을 가꾸고 삶에서 어떻게 즐겨왔는지를 북촌에서 직접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입니다. ​

국립수목원은 총 122곳의 민가 정원을 조사해 식물과 건축물의 현황을 도면화해 아카이브를 만들고, 주제별 민가정원의 식물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정원플랫폼도 시연할 예정입니다. 또한 민가 소유주 인터뷰를 통해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식물과 가옥에 얽힌 옛이야기를 공개합니다.

일상이 된 정원과 식물 가꾸기
민가정원에서 가꾼 식물은 대부분 유실수가 많았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꽃과 나무를 벗삼아 일상속에서 운치를 즐기기도 했지만, 다양한 유실수와 약용식물을 심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했지요.

북촌 한옥청.
북촌 한옥청.

여인들이 주로 생활한 안채 후원에는 꽃을 피우는 계단, 즉 ‘화계(花階)’를 조성했습니다. 아름다운 관상용 꽃이 피어나는 철쭉, 모란, 작약 등을 경사지에 심었고, 매화나무, 앵도나무, 석류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와 같은 과실수를 심어 열매를 얻기도 했습니다.

전라북도 남원의 죽산 박 씨 종가에는 조선 헌종기에 사당을 지은 기념으로 심은 오래된 동백나무가 있는데요. 마을에서는 혼례를 치를 때마다 이 집 정원의 동백꽃으로 혼례상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전통혼례 초례상 좌우에 사철나무, 대나무, 동백나무 등을 꽂아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자연의 멋과 아름다움을 존중한 민가정원
우리 선조들은 정원을 조성할 때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 본연의 멋과 사람에 대한 배려를 담아내려 했습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뒷산의 소나무숲과 대나무숲이 아늑하게 집을 감싸 안고 있는 집들이 많습니다. 또한 경사지에 자리한 크고 작은 바위와 자연에서 자라난 소나무의 자태를 그대로 정원으로 끌어들인 풍경을 보면 선조들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산용궁댁_사랑채 측면 화단. 국립수목원 제공
충청남도 아산 용궁댁은 정원에 정금나무, 가침박달, 매자, 매발톱꽃 등 자생종 위주로 심었습니다. 충북 청주 고은리 고택의 경우에는 집 주변에 피어나는 야생화를 위주로 심어 자연스러운 느낌의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장흥 죽헌고택_사랑마당. 국립수목원 제공
전라남도 장흥 죽헌고택의 경우에 안채 후원 뒤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백나무숲과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삼아서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장흥 죽헌고택_전경. 국립수목원 제공
강원도 강릉 임경당은 가옥 뒤쪽 경사면의 바위와 소나무 숲을 자연 상태 그대로 살려서 풍경으로 취했습니다. ​

사람에 대한 배려가 깃든 정원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살린 우리의 민가 정원에는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깃들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건축물인 전라북도 남원 몽심재 고택의 요요정(樂樂亭)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은 하인들이 기거하던 대문채 동쪽 끝 칸에 자리한 정자와 같은 공간입니다. 그 앞에는 연꽃 향이 그윽한 지당(池塘)이 펼쳐져 있는데요. 당시 정자는 양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신분이 낮은 하인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누리며 휴식을 취할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논산 백일헌_낮은굴뚝. 국립수목원
경상남도 밀양 청운리 안 씨 고가, 충청남도 논산 백일헌 종택, 전라남도 나주 계은 고택은 굴뚝을 낮게 만들었습니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지 않게 함으로써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인근 일반 백성들을 배려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전라남도 나주 홍기창 가옥은 집의 규모를 축소해 화려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일제강점기 등 수많은 외세침입으로 인해 수많은 민가들에 대한 기록이 소실됐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민가정원에 대한 연구와 기록이 시급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에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2019년부터 정원산업기반구축 연구개발(R&D)을 통해 조선후기와 근대의 알려지지 않은 민가정원을 기록해왔습니다.


국립수목원은 일반인들에게도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연구 결과 간행물 ‘가보고 싶은 정원 100‘ 등 43종을 발간해 배포했습니다. 국립수목원 최영태 원장은 “국립수목원은 정원 관련 정책과 연구를 통해 다양한 정원 모델 조성을 위한 기초자료 구축에 힘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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