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는 왜 하나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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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주 부의장이 지인과 주고받은 일본 골프 여행 관련 문자메시지를 보는 모습. 뉴데일리 제공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규탄을 위한 국회 차원의 결의안이 강행 처리됐던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가 한창이던 오후 2시 45분경 민주당 소속 국회부의장인 김영주 의원(4선·서울 영등포갑)이 휴대전화 화면 속 문자메시지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한 인터넷 언론사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체류 기간이 짧으시기 때문에 너무 동쪽보다는 아사히카와 비에이, 후라노, 오비히로 이런 정도 지역이면 한국인이 많이 없이 치실 수 있고 치토세 공항에서도 2시간 30분 정도면 편도로 차량 이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자유시간 때 제가 맛집이라든가 쇼핑이라든가 즐기실 수 있는 부분들을 채워 드리는 거라서~.”
포착된 김 부의장의 휴대전화 화면 사진 속엔 전날 밤 한 지인이 일본 골프 여행 일정을 상의하는 문자 메시지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김 부의장은 본회의 당일인 이날 오전 “7월 18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홋카이도 가이드께서 가능하다고 하니 비용을 보내달라고 해봐”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여당 반발 속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규탄 결의안을 내던 그날 정작 김 의원은 일본 골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의힘은 즉각 부의장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국민의힘 장예찬 최고위원은 3일 YTN 라디오에서 김 부의장을 ‘홋카이도 김’이라고 부르며 “(여행을 가서) 와규(일본산 쇠고기)만 먹고 올 리 만무하다, 수산물도 먹지 않겠는가”라고 비꼬았더군요. 그는 “이렇게 괴담으로 우리 수산업자들이 힘들게 하면서 뒤로는 홋카이도 갈 궁리를 하고 있는 게 지금 민주당 정치인들의 본색”이라며 “이를 국민들이 많이 알아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거죠.

민주당 내에서도 “결의안을 채택하는 날이었고, 본회의장이었기 때문에 시기상 적절하지 않았고 (김 부의장도) ‘부적절했다 ’든지 언급은 필요할 거 같다”(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3일 CBS라디오)는 지적이 나오고 당에서도 엄중 경고하자 침묵으로 버티던 김 부의장도 4일만에 뒤늦게 사과했습니다. 김 부의장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결의안 채택 중에 개인적인 문자로 논란을 일으켜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본회의 중 사적인 문자를 주고받은 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공인으로서 앞으로 더 유념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올렸습니다.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화면이 찍혀 곤욕을 치른 의원들은 김 부의장 이전에도 여럿 있었죠. 국회 본회의가 시작하면 본회의장 1층에 있는 의원석 바로 위 2층 방청석 첫 줄에 언론사 카메라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기 좋은 구조인 거죠.

“본회의장이 워낙 넓기 때문에 평소 사진 기자들이 실내에서 쓰는 준 망원렌즈보다 2배까지 줌이 가능한 렌즈를 쓴다. 본회의가 시작되면 고개를 숙이고 폰을 가리려고 하는 수상한 행동을 하는 의원들이 꼭 있는데, 카메라 기자들도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그 쪽으로 시선을 내내 집중하고 의식한다. 다만 대부분 특종은 오히려 그런 경우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 정도로 조심하는 의원들은 잘 안 들키고, 무의식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받자마자 폰 화면을 켜는 다선 의원들이나 뒤에 기자들이 진 치고 있다는 걸 아직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주로 걸린다.”
국회를 오래 출입한 사진 기자의 설명입니다. 본회의장이 사진 찍기 좋은 ‘명당’이라는 거죠.

21대 국회 들어서도 여러 사례가 있었습니다.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아무래도 ‘체리따봉’ 사건이겠죠.
지난해 7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이른바 ‘체리따봉’ 사건이다.  동아일보 DB
지난해 7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이른바 ‘체리따봉’ 사건이다. 동아일보 DB
지난해 7월 2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나눈 텔레그램 속 이모티콘 한 개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징계 중이던 이준석 전 대표를 겨냥한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윤 대통령의 문자메시지에 권 의원은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체리가 따봉하고 있는 이모티콘으로 답변하면서 이른바 ‘체리따봉’ 사건으로 불린 겁니다. 이 사진 한 장이 국민의힘 내부 권력 투쟁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말을 들었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9월 본회의장에서 ‘(검찰) 출석요구서가 왔다. 전쟁이다’라는 보좌관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9월 본회의장에서 ‘(검찰) 출석요구서가 왔다. 전쟁이다’라는 보좌관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

이어 9월엔 이재명 대표도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속 이같은 텔레그램 문자메시지를 보다가 카메라에 찍혔습니다. 발신인은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현지 보좌관. 검찰로부터 이 대표 소환조사 통보가 왔다는 내용으로, 김 보좌관은 “백현동 허위사실공표, 대장동 개발관련 (허위)사실공표, 김문기 모른다 한 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고 썼죠. 다만 메시지 발신 시각은 오전 11시 10분이었지만, 이 대표가 굳이 메시지를 다시 본 시각은 오후 3시 5분이었습니다. 이 대표의 본회의장 자리는 맨 뒷줄이라 사진 기자들 사이에서도 찍기 어려운 각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잘 보이게끔 노출시킨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죠.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재판을 맡게 된 이환기 재판장 프로필을 알아봐달라며 김관영 전북도지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 동아일보 DB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재판을 맡게 된 이환기 재판장 프로필을 알아봐달라며 김관영 전북도지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 동아일보 DB

역시 검찰 수사를 받던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올해 4월 본회의 도중 자신의 사건 담당 판사에 대한 프로필을 알아봐달라고 같은 당 박범계 의원과 김관영 전북도지사 등에게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찍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딴짓’을 하다 ‘딱’ 걸려서 망신당하는 ‘흑역사’도 비일비재하죠. 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지난해 11월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체스 게임을 하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21대 전반기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권 의원은 청소년 인터넷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하는 ‘청소년 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앞서 2013년엔 심재철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휴대전화로 여성 나체 사진을 보는 모습이 찍혀 국회 윤리특위 위원직을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의원들의 ‘휴대전화 리스크’까지 관리해야 하는 보좌관들 입장에선 한숨만 터져 나옵니다.

국회 경력 10년이 넘는 한 보좌관은 “의원들 휴대전화가 매번 ‘타깃’이 되는 걸 알고 있으니까 화면에 보안필름도 붙여보고, 가급적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보지 말아달라고도 요청드린다”며 “다만 연세가 있으신 의원은 보안필름을 붙이면 자기가 답답해서 안 보인다고 자꾸 떼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보좌관은 “김영주 부의장의 사진 사태로 봤을 때 오히려 다선 의원들이 갖는 안일함과 부주의함을 엿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선 중진일수록 여유가 있다보니 본회의장에서도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거겠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그런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한 보좌관은 “누가 봐도 질 선거에 기어이 나가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라며 “자기는 이길 것이란 확신처럼, 나는 안 찍힌다는 생각으로 그냥 아무 생각없이 휴대전화를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회의 중 심심하니까”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한 전직 보좌관은 “국회의원들이 하루에 받는 문자와 연락이 수백 통이 넘는데, 법안 통과할 때 심심하지 않나. 그 때가 한가하니까 그냥 열어서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회의 도중 애초에 왜 휴대전화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지적도 있습니다. 이럴거면 아예 학교처럼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를 못하게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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