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日, 지난달 中-싱가포르서 2차례 이상 접촉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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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문제-고위급 회담 등 조율
“日, 美에 사전 회동 사실 전해”

북한과 일본이 지난달 제3국에서 수차례 실무접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 고위급 회담 개최 등을 놓고 직접 만나 입장 조율에 나선 것. 앞서 5월 2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길 원한다고 하자 북한은 이틀 뒤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실제 회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양측은 이번 실무 회동에서 주요 사안들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회담에 대한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고위급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일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과 일본은 최근 2차례 이상 물밑접촉에 나섰다고 한다. 소식통은 “양측 실무진이 중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만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이 미국에도 사전에 회동 사실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1970, 80년대 일본에서 실종된 사람 다수가 북한으로 납치됐다고 보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북한과 직접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북한 입장에선 북-일 대화가 한미일 3국 공조를 흔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한국 패싱’ 전략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조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계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납치자 문제 등을 두고 북-일 간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 외무성이 낸 최근 입장이 실무접촉 후 양측 기류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북한 외무성 일본연구소 리병덕 연구원은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납치 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의 아량과 성의 있는 노력에 의해 이미 (납치 문제는) 되돌릴 수 없이 최종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韓美日 공조 흔들려는 北, 日납북자 활용해 국면전환 시도


北-日, 제3국서 실무접촉
北, 韓美 반응 떠보려 ‘日 찔러보기’… 日은 납북문제 해결 이해 맞아
양측 견해차 커 대화 진전 힘들듯… 한국 정부는 北압박 균열 우려도

북한과 일본이 지난달 중국과 싱가포르 등 제3국에서 두 차례 이상 실무접촉까지 가진 건 회동의 필요성에 대해 양측 이해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우선 북한 입장에선 한미일 3각 협력 고리를 약화시키고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일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일본과의 만남을 통해 한미일 3국 공조 기류를 확인하고, 일본을 툭 찔러 봐서 한미 반응까지 떠보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본은 표면적으론 핵심 현안인 일본인 납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동시에 북한과 별도 대화 창구를 열 수 있다면 당장 자국에 위협이 되는 북한 핵·미사일 이슈에서 한미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쥘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北, 日을 국면전환용 ‘테스트 케이스’로 활용”
기시다 후미오 총리
기시다 후미오 총리
앞서 5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례적으로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북측과) 고위급 협의를 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북한은 이틀 뒤 외무성 부상 담화를 통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화답했다. 다만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해야 한다”며 조건도 붙였다. 그러자 기시다 총리는 같은 날 “그것(납북 문제)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고자 한다”며 다시 한번 북-일 정상회담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북-일 양국은 이러한 기류 속에 고위급 협의에 앞서 먼저 몇 차례 실무접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일본과의 실무접촉이 손해될 게 없다”면서도 “다만 일본이 바라는 납북자나 핵 이슈에 대해선 당장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결국 북한이 나서는 이유는 ‘외교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미를 중심으로 북한을 겨냥한 고강도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부터 흔들어 한미일 공조까지 건드려 보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란 것.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도 “당분간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가운데 북한 입장에선 미국과는 올해 안에 교섭을 재개하고 싶을 것”이라며 “북한은 이런 답답한 교착 상황에서 어떤 국면 전환을 위한 ‘테스트 케이스’로 일본을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일본 제안을 대놓고 거부하면 스스로 납북자 문제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보일까 우려해 대화에 나서는 모양새만 취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납북 문제는 예외적으로 일본과 북한과의 개별적 사안”이라며 “일본이 북한을 따로 만날 명분이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납북 문제에선 일본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를 고리로 일본이 별도 대북 대화 창구를 가지고자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도 “결국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대북 정책은 납치 문제,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통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이라며 “납치 문제는 결국 (양국이) 쌍무적인 관계로 대면하게 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북-일 별도 대화, 우리 정부에는 부담될 수도
정부 안팎에선 당장 북한과 일본이 고위급 협의에 이어 정상회담까지 이어가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납북 문제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양측 견해차가 여전하고, 북한이 강도 높은 도발을 이어가는 만큼 일본이 북한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일단은 대화 가능성을 남겨둔 채 물밑 기류만 파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일 대화가 한국 정부에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 도발에 맞서 한미일 3각 공조 강화를 중심으로 북한을 압박해 결국 북한이 스스로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끔 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북한이 납북문제 해결을 원하는 일본을 통해 이런 구상에 균열을 만들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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