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깎아 줄 테니 갈라파고스 살리라”[횡설수설/장택동]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2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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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제도에서 200만 년 전부터 살아온 10여 종(種)의 핀치새는 종에 따라 먹이가 다르고 부리 모양도 다르다. 찰스 다윈이 이를 보면서 진화론의 영감을 얻었다고 해서 ‘다윈의 핀치’라고 불린다. 그런데 핀치들 가운데 ‘맹그로브 핀치’라는 종이 멸종 위기를 맞았다. 지구온난화로 갈라파고스가 따뜻하고 습해지면서 늘어난 흡혈 파리가 맹그로브 핀치의 새끼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 주원인이다.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약 9000종의 동물이 살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다. 수백만 년 동안 대륙과 단절돼 있었고 대형 육식동물이 없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유종이 많다. 하지만 갈라파고스의 상징인 자이언트거북, 바다이구아나 등의 개체 수가 근래 급감하고 있다. 바다에서도 갈라파고스 담셀이라고 불리는 작은 어류가 멸종되는 등 생태계 전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지구온난화로 강한 엘니뇨가 발생하면 플랑크톤이 줄면서 먹이사슬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1982년 발생한 갈라파고스 펭귄의 대량 폐사도 엘니뇨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도 갈라파고스를 위협한다. 지난해에만 28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했고 3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들이 버린 쓰레기와 선박에서 유출되는 기름이 육지와 바다를 오염시킨다.

▷9일 크레디트스위스와 에콰도르 정부는 ‘자연보호-부채 교환(debt-for-nature swap)’ 계약을 체결했다. 16억 달러 규모의 에콰도르 국채를 6억5600만 달러 상당의 환경채권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 미국국제개발금융공사(USIDFC), 미주개발은행(IDB) 등 기관들이 참여해 채권자의 부담을 분산한다. 에콰도르로서는 원금과 이자를 합쳐 약 11억 달러의 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그 대신 앞으로 18년 동안 3억2300만 달러를 갈라파고스 환경 보전에 투입해야 한다. 이로써 갈라파고스 환경 파괴를 막을 최소한의 재원은 마련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양한 생물이 사는 저개발 남반구 국가들은 대부분 서방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독립 이후에도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는 낙후해 환경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만큼 선진국의 지원이 절실하다. 에콰도르의 경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1%만 배출했지만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입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생태계가 무너지면 개도국뿐 아니라 연쇄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타격을 입는다. 개발의 혜택을 누려온 선진국들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 됐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갈라파고스 제도#다윈의 핀치#멸종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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