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조정 칼바람은 실리콘밸리에 이어 월가로 번졌다. 지난달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3200명을 해고했고 블랙록, 모건스탠리, 씨티그룹도 줄줄이 감원 계획을 내놨다. 통상 경기 침체가 오면 생산직 근로자인 ‘블루칼라’부터 타격을 입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 대량 해고는 사무직 ‘화이트칼라’에 쏠려 있다. 미 자동차 기업 포드마저 사무직 중심의 대규모 감원을 알렸다. 이를 두고 2000년 닷컴버블 때 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에 빗대 화이트칼라 불황의 서막이 시작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오히려 미국 블루칼라 시장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요즘 물류·소매업체 등에 지원서를 내면 면접도 없이 30분 만에 채용된다고 한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여가·접객 같은 블루칼라 중심의 서비스업이 리오프닝 이후 일손이 크게 달리기 때문이다. 보잉이 올해 재무·인사부서 직원 2000명을 줄이면서도 엔지니어링과 생산직 1만 명을 충원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여행 수요가 되살아나자 밀려드는 항공기 제작 주문을 감당하기 위한 조치다.
▷대규모 감원까지는 아니지만 채용 한파가 몰아치고 희망퇴직이 잇따르는 국내 IT 업계나 금융권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미국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상황이 뒤바뀐 가운데 ‘고용 있는 침체(Jobful Recession)’를 걱정하지만 우리는 고용도, 성장도 담보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게 차이 난다. 올해 국내 취업자 증가폭은 지난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성장률 전망치마저 나 홀로 뒷걸음질치고 있어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