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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마크롱의 IRA 작심발언 [횡설수설/이정은]

입력 2022-12-03 03:00업데이트 2022-12-0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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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에서 1일 진행된 국빈 만찬 테이블을 장식한 꽃은 ‘피아노 장미’였다. 국빈으로 초청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라는 점에 착안해 선택한 품종이었다. 버터에 구운 랍스터와 캐비아, 마멀레이드를 올린 소고기 스테이크, 수제 치즈 등 메뉴는 셰프들이 6개월 전부터 준비한 것들이다. 프랑스를 상징하거나 양국 인연을 강조하는 청·백·홍의 소품들이 만찬장 곳곳에 등장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 “너무 공격적”이라며 불만을 쏟아낸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백악관의 극진한 대접이 무색할 만큼 직설적이었다. 대면 회담에서 담판을 짓겠다는 의도가 명백한 작심발언이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IRA의 결함을 인정하며 수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으니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외교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지난해 미국의 오커스(AUKUS) 결성 과정에서 77조 원에 달하는 자국의 디젤 잠수함 수출 프로젝트가 허공에 날아간 것에 격분했던 그로서는 쌓인 앙금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IRA는 한국에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알려져 있지만, 법 전체로 보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부분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 그린수소 생산시설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총 369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찌감치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녹색에너지 기업들을 육성해온 유럽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등을 다 합쳐도 미국 시장 점유율이 5%에 못 미치는 전기차를 넘어서는 문제인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나선 것은 유럽연합(EU)을 대신해 총대를 멘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가뜩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난, 인플레이션 등으로 유럽 전체가 경제 문제에 민감해진 시점이다. IRA로 인해 프랑스에만 100억 유로의 투자 손실이 발생하고 1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으니 유럽 전체로는 말할 것도 없다. EU 내에서는 대미 경제보복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동맹끼리 ‘무역 전쟁’이 날 판이다.

▷프랑스보다도 먼저 IRA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나라가 한국이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대통령실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워싱턴을 방문해 줄기차게 수정을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과 이 이슈를 논의했다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앞장서는 모양새가 됐지만, 강력한 대미 압박으로 힘을 보태는 유럽의 우군을 얻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IRA 수정 발언이 립서비스로 끝나지 않게 주요국이 단단히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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