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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동아광장/이지홍]한국 경제의 ‘뜨거운 감자’ 한전 적자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2-12-02 03:00업데이트 2022-12-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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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난 적자, 정부 떠안기도 요금 인상도 부담
에너지 절약, 도매가 상한제로는 한계 있어
전력 시장·요금체계, 포괄적 재설계 필요하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전력 적자가 한국 경제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전쟁 탓에 연료 가격이 폭등했는데 소매가가 원가보다 한참 낮게 고정돼 전기를 만들어 팔면 팔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 한 해 적자만 30조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 탈(脫)러시아 의지가 강해서 특히 천연가스 가격 안정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민간 기업에 가야 할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돈맥경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 빚을 떠안으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기고, 전기요금을 올리자니 가계와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해결을 미루면 문제가 더 커지는 아주 고약한 상황이다.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전기요금 현실화를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적자도 적자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다. 일단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심각한 에너지 낭비가 전방위로 누적되고 있다. 최근의 한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7위로 독일의 20%, 일본의 40% 수준이었다. 한국 제조업의 에너지 효율성 역시 OECD 최하위권이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도움은 되겠으나 근본적인 가격 조정 없이 에너지 소비와 수입을 줄이고 폭발 직전의 한전 적자 문제를 해결하며 작금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다.

시장 원리를 따르는 전기요금은 에너지 빈국이 에너지 자립을 이룩하고 인류의 공동 목표인 기후변화 저지에 일조하는 데도 빠질 수 없는 정책 수단이다. 정부 보조금만으로 에너지 전환을 기대하긴 힘들다. 친환경 기술에 투자할 인센티브는 화석 연료가 비쌀 때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을 보면 총 배출량의 90% 가까이가 에너지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이 중 40% 정도가 발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앞으로 내연기관 퇴출이 가속화하면 온실가스 감축에서 발전 부문의 중요도는 더 커질 것이다. 역설적으로 지금이 전력산업 재도약에 적기일 수 있다.

물론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저소득 가구도 챙겨야 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산업 부문이다. 한전이 파는 총 전력량의 15% 정도만 주택용이고 55%가 산업용, 22%가 일반용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 중심 경제를 키우며 산업 정책의 한 축으로 저렴한 전기요금을 활용해왔다. 급격한 요금 인상이 가져올 국가 경쟁력 저하와 이에 따른 일자리와 소득의 감소에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국 산업 보호가 노골화되는 요즘엔 특히 더 그렇다. 가격 변동성도 문제인데 대부분 기업이 높아진 불확실성 리스크에 무방비 상태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시장 원리의 전폭적인 도입보다 정부가 완만하게 가격을 조정하는 편이 손익 양쪽을 다 고려한 최선의 대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는 시장이 못해주는 부분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시장은 시장답게 돌아가도록 놔주고 부족한 부분은 시장 밖에서 채워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이 초래할 경쟁력 손실은 재정 정책으로 메울 수 있는 부분이다. 법인세 인하 등 재정 보조를 적절히 병행하되 지원을 점차 줄여가며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과 혁신 인센티브를 살리면 된다. 그래야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같은 돈을 써도 시장을 경유한 간접 지원보다 직접 지원이 더 효과적이란 얘기다.

한전 적자는 당장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경제 안보, 신(新)성장동력 창출, 기후 변화 등 국가 핵심 현안들과 직결된 복잡한 사안이다. 도매가 상한제 같은 땜질식 처방으론 어림도 없고 위원회 하나 만들어 전기요금을 올린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미시 및 거시와 금융을 망라하고 국민 세금 투입과 분배 문제를 수반한 총체적 경제 이슈다. 문제가 복합적이니만큼 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 많은 허점을 노출한 탄소 배출권 시장의 재편 등 환경 이슈까지 함께 고려한 전력 시장과 요금체계의 포괄적 재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발전사는 횡재세가 아니라 탄소세를 내야 한다. 한전 또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실질적인 구조 조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준비되기 어렵고 정치 현실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는 이번 위기의 진원이자 동시에 엄청난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에너지 효율화는 안 그래도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하루빨리 지혜와 의지를 모아야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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