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케인 집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미국 해군제독을 지냈으며, 매케인도 해군 소속으로 전투기를 몰았다. 베트남전에서 큰 부상을 입은 채 5년 반 동안 포로로 지냈지만, 적군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석방시켜 주겠다며 협상을 요구하자 매케인 부자는 거절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이 하노이에 억류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곳에 폭격을 강화하라는 본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매케인은 베트남전의 부상으로 평생 통증에 시달렸다. 이런 그의 신조는 ‘Country first(국가가 먼저다)’. 국가가 전쟁에서 지는 걸 보느니 내가 선거에서 지는 게 낫다며 자신의 영달을 고집하지 않았다. 또한 선거에서 상대를 비방하는 걸 극도로 자제했다. 지지자들이 라이벌인 오바마를 비난할 때면 오히려 오바마를 옹호했다. 하지만 러닝메이트인 페일린은 국내외 정세에 너무나 무지했고 그 결과 매케인은 수많은 지지자를 잃었다. 선거캠프는 부통령감을 찾은 게 아니라 선거에서 이길 이미지만을 찾았다. 매케인은 오바마에게 패배한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내가 더 똑똑한 것 같은 착각이 자주 든다. 앞뒤가 안 맞는 궤변을 당당하게 늘어놓는 그들은 억지를 부려도 지지자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니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킬수록 지지도가 올라간다. 우리는 어떤가? 그 말의 진위보다 그가 우리 편인가 아닌가부터 따진다. 거기에 따라 진위를 결정한다. 우리가 그들을 길러냈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도 바로 우리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