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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정치가의 품격[이정향의 오후 3시]

이정향 영화감독
입력 2022-11-30 03:00업데이트 2022-11-3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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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이 로치 ‘게임 체인지’
이정향 영화감독이정향 영화감독
미국의 2008년 대선을 실제로 다룬 TV 영화다. 2007년 여름,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은 같이 선거를 치를 러닝메이트(부통령)를 정하다가 난관에 부딪힌다. 그는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지지와 공격을 동시에 받는 자칭 중도이기에 그가 원하는 부통령 후보도 같은 부류였다. 선거캠프의 참모들은 공화당의 지지 세력들이 반발할 거라며 극구 반대한다. 정치적 경륜이 짧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혜성처럼 등장해 인기몰이를 하자 매케인의 선거캠프는 초조해진다. 40대 때부터 줄곧 국회의원을 지낸 71세의 매케인이 오바마보다 국정 경험은 더 많은데도 부시 정권에 식상한 국민들은 젊고 새로운 인물을 원했다. 매케인의 참모들은 이 물결에 편승하고자 알래스카 주지사인 세라 페일린을 데려온다. 소위 ‘듣보잡’인 그녀를 신선함으로 포장하며 신상 검증도 제대로 안 한 채 성급히 부통령 후보로 확정한다.

매케인 집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미국 해군제독을 지냈으며, 매케인도 해군 소속으로 전투기를 몰았다. 베트남전에서 큰 부상을 입은 채 5년 반 동안 포로로 지냈지만, 적군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석방시켜 주겠다며 협상을 요구하자 매케인 부자는 거절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이 하노이에 억류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곳에 폭격을 강화하라는 본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매케인은 베트남전의 부상으로 평생 통증에 시달렸다. 이런 그의 신조는 ‘Country first(국가가 먼저다)’. 국가가 전쟁에서 지는 걸 보느니 내가 선거에서 지는 게 낫다며 자신의 영달을 고집하지 않았다. 또한 선거에서 상대를 비방하는 걸 극도로 자제했다. 지지자들이 라이벌인 오바마를 비난할 때면 오히려 오바마를 옹호했다. 하지만 러닝메이트인 페일린은 국내외 정세에 너무나 무지했고 그 결과 매케인은 수많은 지지자를 잃었다. 선거캠프는 부통령감을 찾은 게 아니라 선거에서 이길 이미지만을 찾았다. 매케인은 오바마에게 패배한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내가 더 똑똑한 것 같은 착각이 자주 든다. 앞뒤가 안 맞는 궤변을 당당하게 늘어놓는 그들은 억지를 부려도 지지자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니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킬수록 지지도가 올라간다. 우리는 어떤가? 그 말의 진위보다 그가 우리 편인가 아닌가부터 따진다. 거기에 따라 진위를 결정한다. 우리가 그들을 길러냈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도 바로 우리다.

대선 패배를 수락하는 연설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고 따라 주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매케인. 그는 품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정치가였다.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서라면 나라가 망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지금의 정치인들…. 매케인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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