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정점 찍은 중국, 그래서 위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야심과 좌절의 교차로에 선 ‘피크 차이나’
‘패권전쟁의 덫’ 한국도 단단히 대비해야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2025년 1월 18일. 미국은 새 대통령 취임을 이틀 앞뒀지만, 민주 공화 두 후보가 각기 승리를 외치면서 지지세력 수백만 명은 길거리에서 충돌한다. 그 시각,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대규모 해상훈련을 벌인다. 인민해방군은 공수부대와 상륙부대, 전투기, 탄도미사일을 배치한다. 이런 무력시위는 사실상 정례화한 지 오래다.

첩보위성으로 심상찮은 동향을 지켜본 미국 정보기관도 늘 하던 힘자랑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틀렸다. 이튿날 중국군 미사일이 대만의 공항과 정부 건물, 군사 시설, 오키나와와 괌의 미군기지를 일제히 타격한다.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도 직격탄을 맞는다. 이미 침투한 중국 특수부대는 대만 지도부를 제거하고, 급기야 대대적인 상륙작전이 시작된다.

백악관 참모들은 병상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제2차 대전 이래 가장 큰 전쟁을 감수하지 않는 한 막기 어렵습니다.” 당장 추가 전력 투입엔 며칠이 걸리고, 중국의 에너지·식량 수입을 봉쇄하는 ‘목 조르기’엔 몇 달이 필요하다.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저위력 핵무기 공격. 한데 그것은 대만의 파멸, 미국과 중국 모두에 재앙일 뿐이다.

미국의 지정전략가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의 신간 ‘위험지대(Danger Zone)’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상한 최악의 위기 시나리오로 시작한다. 두 저자는 중국의 무력 도발이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임박한 위험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도발적 문제제기의 토대는 이른바 ‘정점을 찍은 강대국의 함정(peaking power trap)’ 이론이다. 신흥강국에 대한 패권국의 두려움이 전쟁을 낳는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살짝 뒤집은 논리다.

국력이 정점에 오른 중국(피크 차이나·peak China)은 야망과 좌절의 교차로에 섰다. 심각해지는 성장 둔화, 급속한 노령화와 노동인구 축소, ‘늑대 외교’가 초래한 적대 국가들…. 이젠 쇠락을 걱정하며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불안과 초조가 지배한다. 1914년 독일과 1941년 일본, 그리고 올해 러시아가 무력 도박을 감행했듯이 중국도 바로 강대국 성쇠 주기의 가장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지금까지의 중국 위협론이 ‘100년의 마라톤’ ‘롱 게임’처럼 치밀한 전략경쟁을 주문하는 것이었다면 ‘피크 차이나’ 위기론은 당장이라도 닥칠 패권 충돌에 대비하라는 경보음이다. 그렇다고 그 처방이 크게 다르진 않다. 대만에 대한 군사지원과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 차단, 인터넷의 분리까지 ‘봉쇄정책 2.0’의 가동이다. 이미 미국 행정부가 차근차근 밟아가는 정책 기조인데, 당장 위험지대를 통과하려면 급가속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런 대중 강경론엔 반론도 적지 않다. 다만 중국의 거침없는 팽창과 강압적 행태에 온건론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이처럼 충돌 임박론까지 나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두려움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넘버2 강대국 중국과 넘버1 핵국가 러시아를 상대로 두 개의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워싱턴 조야를 지배하는 것이다.

미중은 지금 상대의 인내심과 조바심을 떠보며 무력 충돌에도 대비하고 있다. 국제정치는 소수 강대국이 지배하는 과두체제다. 그 냉혹한 무대의 조역일 수밖에 없는 한국은 다가올 위기에 비상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대만해협으로 주한미군이 차출되고 북한이 그 틈을 노린다면, 한국이 미중 전쟁의 후방기지가 된다면…. 우리는 과연 대비하고 있는가.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중국#피크차이나#패권전쟁의 덫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