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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러시아발 가스 대란, 에너지 공급 다각화 시급하다[동아광장/이지홍]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2-08-12 03:00업데이트 2022-08-12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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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가스 무기화’로 가격 상승, 글로벌 악재
韓 가스발전 비율 29%로 높아, 에너지 위기
친환경 혁신 지원해 가스발전 대체재 찾아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우크라이나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유라시아 가스관을 통해 유럽 국가들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평소 수준의 20%로 낮췄다. 이 가스관을 통해 대(對)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50%에 육박하게 된 유럽은 그야말로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맞았다. 난방 시즌을 앞두고 가스뿐 아니라 석탄, 나무 등 온갖 땔감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러시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가스관을 구상하며 신북방정책을 야심 차게 추진한 게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믿기 힘들 정도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는 한국과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악재다. 유가와 곡물가가 진정 기미를 보이니 가스값이 치솟고 있다. 산 넘어 또 산이다. 유럽에선 지난 한 해 가스 가격이 무려 3배 넘게 올랐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유가가 비슷한 폭으로 급상승하며 인플레와 불황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한 바 있다. 지난 50년간 서방 세계의 원유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가스 의존도는 크게 늘었다. 요즘 세상에 한 지역의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다. 폭등한 에너지 수입 원가를 아무리 정부가 떠안아도 그 영향은 무역 수지와 환율에 반영되고 물가와 금리 상승으로 귀착된다.

글로벌 천연가스 매장량의 25%가 러시아에 묻힌 것으로 추산된다. 이란이 가진 17%만 더해도 거의 절반이 신(新)냉전 구도의 ‘저쪽’에 있는 것이다. 이 많은 가스의 일부만 시장에서 빠져도 총체적 에너지 위기가 불가피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이란을 직접 방문해 공동 가스 개발을 약속했고,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오일·가스 수입량을 꾸준히 늘리며 반(反)서방 진영의 돈줄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원자재발(發) 고(高)물가가 단시일에 해소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서방 세계의 가스 의존도가 높아진 건 기후 문제 탓도 크다. 가스는 석탄보다 비싸지만 탄소배출량이 적어서 친환경 ‘에너지 믹스’가 그 진용을 완전히 갖출 때까지 핵심 전원(電源)으로 부상했다. 탈석탄과 탈원전을 동시에 밀어붙인 독일이 육로 운송이 가능한 러시아산(産) 가스에 중독된 이유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스 발전 설비를 대폭 확대하는 중장기 에너지 수급 계획을 수립했고, 지난해 가스 발전 비중은 29%를 기록해 34%를 기록한 석탄을 거의 따라잡았다.

그러나 최근 급등한 가스 가격은 이 같은 에너지 정책의 경제성을 크게 악화시켰다. 경제 안보 시대를 맞아 공급망의 다변화도 꾀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주요 수출 경쟁국과의 상대적 생산 비용과 리스크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있으나 마나 한 온실가스 규제에다 이제 자원 부국 러시아의 특별 대우까지 받게 된 중국과의 경쟁은 한층 힘겨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늦출 수도 없는 형편이다. 에너지 자립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제질서 아래선 기후 안보가 곧 경제 안보 문제가 돼 버렸다.

당면한 난국을 돌파하려면 우선 유연한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 신재생 발전은 불완전하고 신규 원전도 당분간은 실전 투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탈석탄 기조를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석탄 발전을 충분히 가동하는 대신 다양한 친환경 혁신을 촉진할 인센티브를 적극 마련하고, 특히 안정적이면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가스 발전의 대체재를 하루빨리 강구해야 한다. 일례로 신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생산한 ‘그린수소’를 암모니아 형태로 만들면 석탄과 혼소(混燒) 발전이 가능해지는데, 이런 신기술은 단기적으로 가스를 대체하고 장기적으로 수소생태계도 키우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보인다.

경쟁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외교 문제로 호주에서 석탄 수입을 중지한 후 극심한 전력난을 경험한 중국은 외교정책 유턴과 수입 재개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은 이미 작년부터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석탄의 완전 퇴출을 목표로 암모니아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갈 계획이다. 한국 정부가 장기 계약 물량 등을 이유로 에너지 수급에 낙관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사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소모전으로 치닫고 온 세계는 원자재 쟁탈전에 돌입했다. 유럽의 가스 대란은 남 일이 아니다. 안일하게 봤다간 마스크, 요소수, 코로나19 백신 부족 사태와는 또 다른 차원의 재난이 닥칠 수 있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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