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세척 ‘초순수’ 국산화 눈앞… 水처리 산업서 주도권 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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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고순도 공업용수 실증플랜트
6인치 웨이퍼 제조 시 1t 이상 필요
日 시설서 공급… 지난해 국산화 착수
10월 완공해 하루 1200㎥ 생산 목표

경북 구미시 반도체 공장단지 안에 건설 중인 초순수 생산시설에서 한 작업자가 전해질 여과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구미=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경북 구미시 반도체 공장단지 안에 건설 중인 초순수 생산시설에서 한 작업자가 전해질 여과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구미=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전원이 켜진 휴대전화를 물에 빠뜨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고장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 물에 빠뜨리면 고장이 나지 않고, 심지어 물에 들어간 채 작동도 된다. 이 물은 무엇일까.

정답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이다. 전문 용어로는 ‘초순수(UPW·Ultra Pure Water)’라 부른다. 실제로 ‘순도 100%’의 물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에 가깝게 만든 초순수에는 전해질을 비롯한 이물질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공기 중에 있는 것과 동일하게 그 안에서 전자기기를 작동시킬 수도 있다.

초순수는 여러 정밀산업에서 쓰인다. 특히 반도체 제조에는 많은 양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반도체의 핵심 재료인 얇은 실리콘 원판을 ‘웨이퍼’라 하는데, 6인치 웨이퍼를 하나 깎아내는 데만 고(高)순도 초순수가 1t 이상 필요하다.

하지만 ‘반도체 강국’ 한국에선 그동안 반도체 산업에 쓰이는 초순수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부가 주요 공정의 국산화 작업에 나섰다. 그 첫 번째 성과로 초순수 생산시설인 ‘고순도 공업용수 실증 플랜트’가 경북 구미에서 10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그곳을 미리 다녀와 봤다.

○ 우리 기술로 만드는 고순도 초순수
한국수자원공사 초순수연구팀 연구원이 비커에 담긴 초순수를 살펴보는 모습. 순도 100%에 가까운 물인 초순수는 각종 
첨단산업에 사용된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한국수자원공사 초순수연구팀 연구원이 비커에 담긴 초순수를 살펴보는 모습. 순도 100%에 가까운 물인 초순수는 각종 첨단산업에 사용된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이곳이 우리 기술로 설계하고 시공 중인 첫 반도체급 초순수 대량 생산시설입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이국진 전문위원이 15일 구미의 한 반도체 공장단지에 있는 4층짜리 하얀 컨테이너 건물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4층이지만 층고가 높아 전체 높이는 일반 7, 8층 건물과 비슷했다. 1∼3층에는 이미 비닐에 싸인 생산설비가 꽉 들어차 있었다.

고순도 공업용수 실증 플랜트는 수(水)처리와 관련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시설이다. 일례로 2층에 있는 역삼투막(RO) 장치는 거름막 틈새가 0.1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다.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분의 1보다 큰 물질은 이 장치의 거름막을 통과할 수 없다. 3층 자외선 산화장치는 물 안의 유기물 농도를 0.01ppm 아래로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 농도는 일반 식품가공용으로 쓰는 깨끗한 물보다 최대 500분의 1 더 낮은 것이다.

이 초순수 대량 생산시설에는 이런 설비가 20, 30개 들어가 있다. 이들 설비를 어떤 순서로 놓고, 온도와 수압 등의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초순수의 품질이 결정된다. 단 한 곳이라도 오차나 오작동이 발생하면 반도체급 초순수를 만들 수 없다. 기계 제조 기술만큼이나 초순수 생산 과정 설계와 시공이 첨단 기술인 이유다.

그동안 미국, 일본 등 반도체 선도국들이 이런 기술들을 독점하다시피 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일본 기업이 설계한 시설에서 초순수를 공급받아 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환경부가 ‘고순도 공업용수(초순수) 국산화 기술 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1년 만에 민관이 함께 초순수 생산 설계와 시공을 국산화한 것이다.

이 전문위원은 “아직 장비는 모두 외국산이지만 내년이면 국내 민간기업이 개발한 용존기체, 유기물 제거 등 3가지 핵심 장비가 추가 투입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말 이곳에선 하루 초순수 1200m³ 생산이 목표인데 내년 추가 국산 장비 설치까지 마치면 하루 생산량이 2400m³까지 늘 것으로 보인다.

○ 초순수 기술과 인력도 함께 키워야

고순도 초순수 사업의 국산화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국가전략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해외 의존도를 줄일 뿐 아니라 초순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다른 첨단산업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한국초순수학회 초대 회장인 남궁은 서울대 연구교수는 “반도체급 초순수 기술은 물 관련 산업에서의 ‘킹핀(king pin·볼링핀 10개 중 정중앙핀)’에 해당된다”며 “킹핀을 맞히면 모든 핀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초순수 기술을 확보하면 수처리가 필요한 모든 산업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초순수는 반도체 외에도 다양한 첨단산업에서 사용된다. 한국수자원공사 초순수연구팀 이경혁 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희석액으로 쓰이는 생리식염수도 초순수로 만든다”며 “바이오, 액정표시장치(LCD), 태양광, 2차전지, 화장품 등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급 초순수 국산화 기술 개발에는 2025년까지 민관이 443억4000만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정부는 여기에 초순수 생산기술 연구와 개발, 인력 양성까지 수행하는 ‘초순수 플랫폼 센터’를 만드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일종의 ‘초순수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다. 문제원 환경부 물산업협력과장은 “올해 기본 구상을 거쳐 내년 타당성 조사 뒤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차근차근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미=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고순도 공업용수#반도체 세척#초순수#국산화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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