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 아닌 ‘대세’로 X세대를 소환하라[광화문에서/김현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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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DBR 편집장
김현진 DBR 편집장
‘미국의 방치된 둘째 아이(America‘s neglected middle child).’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가 미국의 X세대를 설명한 표현이다. 손이 많이 가는 첫째, 어딘가 짠한 막내에 비해 신경이 덜 쓰이는 둘째에 비유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는 세대라는 의미다. X세대에 대한 구분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현재 40대와 50대 초반까지다. 국내의 X세대 비중은 26%로 베이비붐 세대(15%), 밀레니얼 세대(22%), Z세대(14%)에 비해 우세하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이들은 종종 ‘낀 세대’ ‘깍두기’라 불리며 다소 억울한 대접을 받고 있다.

리더십 컨설팅 기업인 DDI, 회계·컨설팅 법인인 EY 등이 전 세계 54개국, 26개 주요 산업 분야 리더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5년간 X세대의 승진 횟수는 밀레니얼,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실제 업무량은 다른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 시장에서도 X세대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기업들이 차세대 소비자라며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공략에 나섰지만 사실 지출액 자체는 40대가 가장 높다.

이렇게 숨은 실세이면서도 X세대가 조직 내에서, 또 소비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국내외 연구를 종합해보면, 먼저 베이비부머가 불안한 경제·사회 환경 속에서 은퇴를 미루며 조직 내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점이 꼽힌다. 동시에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주목받게 됐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소외됐던 X세대가 드디어 재평가되고 있다. 먼저 학계 및 컨설팅 업계는 X세대의 유연성과 균형 감각이 팬데믹을 겪으며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더욱 커진 시기에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X세대는 어린 시절, 서예 학원과 컴퓨터 학원을 함께 다녔을 정도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정서에 모두 익숙하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으면서도 후배 세대의 다양성 역시 인정할 줄 안다.

X세대의 이러한 ‘하이브리드형’ 인재상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내놓은 솔루션은 ‘그들의 상실감을 어루만질 것’이다. DDI의 스테파니 닐 연구소장은 “X세대가 일에 치여 심신이 소진되지 않도록 외부 전문가의 코칭, 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해야 할 것”이라며 “또한 세대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이 고용과 승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 시장에서도 X세대 고객에 대한 투자가 경쟁이 치열한 MZ세대 마케팅 전쟁 속에서 오히려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4050 여성을 집중 공략한 패션 플랫폼이 없다는 빈틈을 노린 덕에 출시 2년도 되지 않아 월 거래액 100억 원이 넘는 성과를 낸 ‘퀸잇’이 좋은 사례다.

X세대는 서태지, 방시혁, 나영석 등 문화 지도를 바꾼 선구자들을 비롯해 창업 시장 등 각계각층에서 변곡점을 빚은 주역들이 속한 혁신 집단이다. 변화가 생존의 기본요소가 된 시대, 이들에게 내재된 ‘X스피릿’이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할 때가 왔다.

김현진 DBR 편집장 bright@donga.com
#낀 세대#x세대#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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