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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탄소중립’ 외치지만…기업 92% “추진 중 규제 애로 경험”

입력 2022-05-30 10:13업데이트 2022-05-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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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pixabay


#1. 환경관리업체인 중견기업 A사는 공장 매연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재활용은 폐기물관리법 상 ‘폐기물처리업’으로 분류돼 각종 사업 인허가 취득에만 최소 1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재활용 목적도 화학제품으로만 제한돼 시멘트에 쓸 수 있을지 미지수다. A사는 우선 인허가라도 받기 위해 작년 지방자치단체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주민 기피시설이란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A사는 해당 사업을 전면 보류했다.

#2. 전기자동차 배터리 기업 B사는 사용 후 버려지는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선뜻 사업화하지 못하고 있다. 폐기물처리업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다 필수 검사비용이 너무 비싸서다. 폐배터리의 재사용 가능 여부를 평가하는 ‘배터리 잔존가치검사’ 비용은 대당 1000만 원이다. 신품 배터리 가격(2000만 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매년 버려지는 배터리가 늘어나는데도 기업들이 손을 놓고 있는 배경이다.

산업계에 거센 탈(脫)탄소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탄소 중립을 위한 신사업이나 기술 혁신이 현행 규제에 가로막혀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대한상공회의소의 ‘산업계 탄소중립 관련 규제 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의 92.6%가 탄소중립 기업 활동 추진과정에서 규제 애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 기준 상위 1000대 제조기업이 조사 대상이었고, 최종 응답기업은 302곳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기업들의 탄소중립 추진 과정 중 규제애로 상황.(대한상공회의소 제공)© 뉴스1


기업들이 겪은 애로사항의 유형으로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절차’(51.9%)가 가장 많았다. 이어 ‘법·제도 미비’(20.6%), ‘온실가스 감축 불인정’(12.5%), ‘해외기준보다 엄격’(8.7%), ‘신사업 제한하는 포지티브식 규제’(6.3%) 순이었다. 정부가 설정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2018년 대비 40% 감축’ 목표에 따라 기업들도 탄소 중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활동들이 오히려 정부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이나 시간 지연이 아니라 기업들의 사업 자체에 차질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 애로를 경험한 기업의 65.9%는 규제 때문에 ‘시설투자에 차질’을 겪었다고 답했다. ‘온실가스 감축계획 보류’(18.7%), ‘신사업 차질’(8.5%), ‘연구개발(R&D) 지연’(6.9%) 이란 응답이 뒤를 이었다.

대한상의 측은 “탄소중립 관련 신사업 추진과 혁신기술 개발은 비용이 드는데다 사업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 중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며 “법과 제도가 오히려 이를 막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많은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신사업 진출과 혁신 기술 개발로 탄소 배출 감축에 나서기보다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방식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기업 활동에 대해 ‘전력사용저감’(55.5%)이란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연료·원료 전환’(19.5%), ‘재생에너지 사용’(10.2%) 등도 있었다. ‘신사업 추진’(4.7%)이나 ‘혁신기술 개발’(1.9%)이란 응답은 소수에 그쳤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국내 상당수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아 도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새 정부가 과감하게 규제를 개선하고 제도적 기반을 조속히 마련해 우리 기업이 마음껏 탄소중립 투자를 하고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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