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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배극인]‘김치 코인’의 몰락

입력 2022-05-16 03:00업데이트 2022-05-1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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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코인’으로 불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던 자매 코인, 테라와 루나 거래 가격이 폭락해 상장 폐지가 이어지고 있다. 루나는 일주일새 99.99%, 테라는 80% 넘게 급락했다. 가상화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 재산을 잃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글이 이어져 경찰이 순찰을 강화했다. 코인을 발행한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30) 자택을 찾아 초인종을 누르고 달아났던 남성은 20억 원을 날렸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테라는 코인당 가치가 1달러로 유지되도록 설계한 스테이블코인의 한 종류다. 1테라가 1달러보다 싸지면 자매 코인인 루나를 팔아 테라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가격을 유지한다. 반대일 땐 테라를 팔고 루나를 사들인다. 이번에도 테라 가격이 떨어지자 루나를 팔고 테라를 사들였지만 매물이 쏟아지면서 가격 조정에 실패했다. 이에 루나를 대규모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 했다. 하지만 신뢰를 잃은 투자자들이 루나 투매에 나서면서 테라도 급락하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져들었다.

▷업계에선 예전부터 다단계 사기 수법인 ‘폰지 사기’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다른 스테이블코인들은 준비 자산으로 달러나 금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테라와 루나는 실물자산 담보 없이 ‘알고리즘 방식’으로 코인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상승장에선 문제가 없지만 이번처럼 하락장에선 대규모 인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CNN은 이번 사건을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 견줬다.

▷테라와 루나를 만든 권 대표는 ‘한국판 일론 머스크’로 불렸다. 국내 외국어고를 나와 미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로 일했다. 2018년 회사를 설립해 가상화폐 거물이 됐다. 하지만 이제 피 몇 방울로 온갖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했던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홈스와 동급에 올랐다. 그는 코인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바퀴벌레”라는 식으로 대응하곤 했다. 작년 7월 영국 경제학자가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자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했다.

▷폰지 사기 의혹에도 루나는 한때 시가총액이 50조 원에 달해 시총 45조 원인 네이버를 능가했다. 테라 시총도 23조 원을 웃돌았다. 흔히 가상화폐를 ‘디지털 금’에 비유하는 이도 많지만, 이번 사태는 가상화폐와 금은 변동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의회에서 가상화폐 시장의 규제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어떤 투자든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 새길 때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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