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전쟁 싫다” 러 고학력 인재들, 우크라 침공 후 30만명 ‘엑소더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1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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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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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야만 했습니다.”

러시아의 유망 스타트업 ‘펀익스펙티드(Funexpected)’의 공동 대표인 사샤 카질로 씨는 최근 가족과 회사 직원 15명을 데리고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향했다. 카질로 씨의 남편이 러시아에서 반전 스티커를 나눠줬다는 혐의로 감옥에 13일간 수감된 후였다.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문직에 종사하는 러시아인들 수십만 명이 자국을 떠나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러시아인 30만 명이 자국을 떠났다. 이들은 주로 IT(정보기술), 과학, 금융,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직들로 프랑스, 아르마니아, 터키 등 인근 국가로 향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던 IT 분야에선 3월까지만 해도 최소 5만 명에서 7만 명이 떠났다. 러시아 IT 기업인 얀덱스의 엘레나 부니나 최고경영자(CEO)는 “이웃과 전쟁을 벌이는 국가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내 공지를 올리고 회사를 떠났다. 러시아 국영 항공사인 아예로플로트의 안드레이파노프 부사장도 “국영 기업에서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러시아의 침공 이후 10일 만에 러시아를 떠났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거 러시아를 떠나며 러시아의 경제 성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엘리나 리바코바 국제금융협회(IIF)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를) 떠나거나 떠날 계획인 사람들은 고학력자이고 대체로 젊다”며 “이는 가장 생산성이 높은 노동력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유럽부흥개발은행은 당초 러시아의 성장률이 3%에 달하리라 예측했던 것을 뒤집고 “러시아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10%로 역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전례 없는 빠른 속도의 대규모 이주에 러시아 정부는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각종 방침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 정부는 IT 분야 종사자에게 군 징병 면제를 허용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세금 감면, 우대 담보 대출 등도 약속했다.

그러나 인력 유출은 지속될 전망이다. 러시아에 남아 있는 사람 중에서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의 한 그룹에선 23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가입해 항공편, 이민 문서, 해외 송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채용정보업체 ‘헤드헌터(Head Hunter)’에 따르면 러시아의 IT 기업 종사자 약 40%가 해외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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