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들, 광주 시민의 힘으로 고국 땅 밟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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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 못 구해 현지서 난민 생활… 광주고려인마을, 성금 운동 진행
개인-기업 온정의 손길 이어져… 70명에 한국행 비행기 티켓 전달
“시민들 덕에 기적 같은 일… 감사”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3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광주고려인마을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 5명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를 기원하는 캠페인이 개최됐다. 광주고려인마을은 이번 캠페인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진행할 방침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3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광주고려인마을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 5명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를 기원하는 캠페인이 개최됐다. 광주고려인마을은 이번 캠페인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진행할 방침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이 된 고려인 동포들이 전쟁의 화마를 피해 한국에 입국하고 있다. 이들의 기적 같은 귀국 행렬에는 광주 시민들의 온정이 큰 힘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주고려인마을은 지난달 입국한 최마르크 군(13), 남아니따 양(10) 등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이 된 고려인 70명을 위해 시민 성금으로 마련한 한국행 항공권을 보내줬다. 이들은 12일까지 모두 귀국할 예정이다. 광주고려인마을 주민들은 이들의 귀국에 대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광주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마을의 한 주민은 “힘든 처지의 고려인 동포들이 최대한 많이 귀국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광주 시민들 덕분에 가능해졌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는 고려인 4만∼5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1800년대 후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두만강 북방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의 후손이다. 당시 연해주에 정착했던 고려인들은 1937년 소련 정부에 의해 1만5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고, 생계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정착한 고려인이 상당히 많았다.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은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탈출해야 했고, 인접 국가인 헝가리, 루마니아, 폴란드 등으로 옮겨가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고려인들은 숙소를 구하지 못해 노숙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가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지만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한다.

이에 광주고려인마을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고려인 동포의 국내 귀환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모금한 성금은 8471만 원, 후원은 총 173건이다. 생명보험협회가 2000만 원을 기부하는 등 단체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 제주 시민과 호주 동포, 외국인 근로자까지 온정을 보탰다. 마을 관계자는 “현행법상 정부나 자치단체의 지원이 어려워 온전히 시민들의 힘으로 성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시민들의 성금은 1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는 후원금 1000만 원을 각각 기부한 위모 씨와 한 단체도 있다. 마을 관계자는 “우린 위 씨를 ‘키다리 아저씨’로 부르고 있지만 어떤 분인지 모르고, 단체 이름도 모른다. 연락처라도 알게 되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소독기, 분무기를 생산하는 ㈜에스엠뿌레는 500만 원을 기부했다. 이 회사의 홍기술 대표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항공권 15장을, 광주YMCA는 250만 원을 후원했다. 광주고려인마을 주민들도 500만 원을, 고려인마을법률지원단도 150만 원을 기탁했다.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을 위한 물품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전남 담양군에 사는 사단법인 평화아카데미 소속 회원 한명옥 씨가 20kg들이 쌀 5포대를, 김정호 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학감이 20kg들이 쌀 20포대를 전달했다. 광주하남JC 회원들은 여성 의류와 주방용품을 보내왔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는 고려인 동포들의 광주 정착을 위한 원룸 보증금과 두 달분 월세를 지원할 방침이다.

광주고려인마을은 2001년 고려인 3가구가 광산구 월곡동에 정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해 현재는 고려인 70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하남·평동공단 등지에서 일하며 마을에 종합지원센터,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등을 운영 중이다. 인천 연수구, 경기 안산시, 경북 경주시, 충남 당진시에도 고려인들이 살고 있지만 커뮤니티 형태는 광주고려인마을이 유일하다.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 대표는 “광주 시민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줘 고마움을 느낀다”며 “바람이 있다면 우크라이나 난민 고려인 동포 100명 이상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추가로 항공권을 보내주고 싶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광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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