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창의성 원천? 실컷 놀고 수다 떨고 마음껏 공상한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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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새해특집]
‘황금손’ 3人이 밝힌 창작 노하우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 ‘7년의 밤’ 소설가 정유정, ‘D.P.’ 김보통 웹툰작가

《가위 한국 콘텐츠의 황금기다. 다양한 창작 생태계와 활발한 도전이 성공 비결로 꼽히지만 핵심은 빼어난 창의성이다. 동아일보는 2022년을 맞아 세계를 뒤흔든 콘텐츠계 ‘황금손’ 3명과 창의성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51)과 ‘완전한 행복’,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소설가(56),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원작 웹툰을 그린 김보통 작가(41)가 창작의 원천을 공개했다.

황 감독은 영화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정 작가가 쓴 ‘완전한 행복’, ‘종의 기원’은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휩쓸었고 ‘7년의 밤’은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한국 군대의 가혹행위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D.P.’는 국내를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들이 신선하고도 놀라운 콘텐츠를 만든 비결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온몸으로 즐긴 놀이


황동혁 감독과 ‘오징어게임’.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넷플릭스 제공
황동혁 감독과 ‘오징어게임’.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넷플릭스 제공
황 감독은 “초등학생 때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온갖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 경험이 쌓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탄생했다”고 했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갖가지 골목 놀이를 하며 자란 기억이 대작 탄생의 비결이라는 것. 친구들과 어울리는 황 감독을 향해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멀리 가지 마라”, “밥 먹으러 와라”고 당부하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작품으로 피어났다.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우(박해수)의 애절한 대사 “어릴 때, 형이랑 이러고 놀다 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부르네”가 그것.

정유정 소설가와 취재노트.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은행나무 제공
정유정 소설가와 취재노트.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은행나무 제공
정 작가가 어린 시절 사방팔방 들판을 뛰어다닌 기억은 그의 작품에 깊이 녹아 있다. 전남 함평군이 고향인 그는 친구들과 매일 늪 주변에 있는 폐가를 찾아다니며 놀았다. ‘완전한 행복’에서 나르시시스트인 주인공이 폐가와 다름없는 시골집에 사는 풍경을 묘사한 것도 그때 경험에서 비롯됐다. 정 작가는 “작품에 도시가 아닌 시골 풍경이 자주 나오는 건 천둥벌거숭이 시절 뛰어놀던 경험 때문”이라며 “어릴 때 그렇게 놀지 않았다면 소설 속 다양한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각계각층과 즐기는 수다


황 감독은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영감을 얻곤 한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지인을 옆에 앉혀 놓고 대화하며 글을 쓸 정도다. 영화·드라마 연출팀, 미술팀 등 다양한 스태프와 자주 대화하는 건 물론이다. 대학교수, 회사원, 금융인, 판사, 변호사 등 각종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집에서 모여 밤새 수다도 떤다. 친구들이 말해주는 각 직업의 ‘뒷담화’가 그에겐 창작의 샘. 황 감독은 “대화는 항상 내게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해당 분야 종사자들을 찾아다니며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사, 기자 등 등장인물의 특성을 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이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각종 방법을 이용한 살인 사건을 묘사하기 위해 전문의, 프로파일러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를 반드시 노트에 정리한다. ‘완전한 행복’을 쓸 땐 약리학 교수에게 자문해 약물로 등장인물을 죽이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정 작가는 “전문가와의 대화는 치명적 실수를 막을 뿐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말했다.

김 작가가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비결도 군 생활 때 귀를 활짝 열어둔 덕이다. 김 작가는 육군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의 군무이탈자 체포전담조인 DP(Deserter Pursuit) 조원으로 근무했다. 근무이탈자의 부모, 여자친구, 친구들을 샅샅이 만날 때마다 이들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왜 그들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하게 됐고 이는 창작으로 이어졌다. 김 작가는 “근무이탈자의 지인을 만나다 보니 근무이탈자들이 마치 내 지인처럼 느껴졌다”며 “독자에게도 그때의 내 심정을 전하고 싶어 웹툰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분야 망라한 잡식성 관심


황 감독은 매체,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빨아들이는 ‘잡식 동물’이다. “게으르고 싫증을 잘 내서”라는 겸손한 표현과 달리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만화 등을 두루 섭렵한다. 한국에선 생소한 서바이벌 장르 ‘오징어게임’을 만든 것도 ‘배틀로얄’, ‘라이어 게임’ 등 서바이벌 장르 만화를 좋아한 덕이다. 황 감독은 한때 소설과 시를 짓고, 영화 평론도 공부했다. 황 감독은 “집에 혼자 있으면 TV를 틀어놓고 책을 읽는데 어느 순간 탁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며 “작품은 이 모든 종합적인 것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의외로 다른 웹툰은 잘 보지 않는다. “열등감만 생기고, 속이 터지기 때문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김 작가는 다른 분야 콘텐츠에 대해선 레이더를 켜고 다닌다.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뉴스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뉴스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또 기구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나가기도 한다. 창작물에 한정하지 않고 현실을 다룬 콘텐츠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취향 덕에 그의 작품은 현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작가는 “작품을 허구로만 채우는 건 탈영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희석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실제 보도된 사건을 참고해 현실감을 살렸다”고 했다.

상상력 날개 달아준 독서


황 감독은 어린 시절 계몽사 문고와 백과사전을 탐닉했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백경’(모비딕)이나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 작품에 빠진 게 대표적. 책에 나온 장면을 외우다시피 하고 자신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즐겼다. “너무 재미있어서 같은 책을 반복해서 계속 읽었다”는 황 감독은 “혼자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상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공상에 빠져 종점까지 간 적도 있다.

정 작가는 다독가로 유명하다. 책 한 권을 쓰기 전 수십 권을 읽는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이야기를 쓸지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쏟아진다고 한다. ‘완전한 행복’을 쓰기 전엔 행복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50권이나 읽었을 정도. 정 작가는 “독서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뼛속까지 새긴 경험


김보통 작가와 ‘D.P.’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네이버웹툰 제공
김보통 작가와 ‘D.P.’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네이버웹툰 제공
김 작가는 보편적인 경험이 이야기의 힘이라는 걸 보여준 대표적 작가다. 군 생활은 한국 남성 다수가 하는 경험이기에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좋은 소재였다. ‘D.P.’ 역시 자신의 군복무 경험에 주변의 군 생활 사례를 더했다. 그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나’라는 독자를 위해 만드는 것”이라며 “내 경험에서 온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마음을 정리해야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더 이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5년간 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약물을 이용한 범죄를 작품에서 자주 활용한다. 그는 간호사 시절 대부분을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거쳐 간 장소에서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그의 작품이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정 작가는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까지, ‘악의 3부작’을 쓴 것도 인간 본성을 알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황동혁#정유정#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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