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첫 박사 꿈꾸는 서용빈 KT2군 감독 “인생도, 야구도 배움에는 끝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4일 11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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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한 것 못지않게 기분이 좋네요.”

13일 만난 서용빈 KT 위즈 퓨처스(2군) 감독(50)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속팀 KT는 지난 달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창단 첫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또 하나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학원 박사과정 합격 통지였다.

서 감독은 내년에 박사과정 신입생이 된다. 지난 달 2022년도 한국체대 대학원 체육학과 일반전형에 응시한 그는 만만치 않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증을 받았다. 전공은 스포츠코칭이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박사과정 도전은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KBO리그 현역 코칭스태프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남이 가 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서 감독을 서울 송파구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뜻밖의 도전인 것 같다.

“2018년부터 한국체대 대학원에 입학해 올해 여름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석사 공부를 하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정말 많이 배웠다. 스포츠와 관련된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하고 싶었다.”

서 감독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SPOTV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중에는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고, 야구 중계는 주말에만 몰아서 했다. 방송사의 배려 덕분에 그는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개근을 할 수 있었다.

-해설할 때는 그렇다 쳐도 올해 2군 감독을 하면서 석사 논문을 완성했다는 게 놀랍다.

“2군 훈련을 마치면 남아서 밤에 공부를 하고 논문을 정리했다. 방송 해설위원을 하던 지난해 어느 정도 논문의 틀을 잡아놓았고, KT에 합류한 올해는 틈틈이 논문을 다듬었다. 팀이나 선수단에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주로 밤에 작업을 했다. 늦는 날은 밤 12시, 1시까지 감독실에 있었던 것 같다.”

서 감독이 쓴 논문 제목은 ‘KBO 우수 팀의 상황에 따른 공격 전술에 관한 사례 연구’다. 오랜 기간 프로야구 감독을 역임한 두 명의 감독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격 전술을 다뤘다. 좀처럼 보기 힘든 야구 관련 논문이다.

서용빈 석사 졸업사진
서용빈 석사 졸업사진

-해설과 공부 이후에는 2군 감독과 공부를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대학원 첫 해는 너무 힘들었다. 해설도 처음 해 본데다가 학교에서 공부를 해본 것도 너무 오랜만이었다. 안 해 보던 과제까지 해야 하니까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적응을 했고,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LG에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고, 2017년까지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와 LG에서 코치로 일했다. 왜 갑자기 공부를 시작했나.

“사실 오래 전부터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왜? 내가 많이 부족했으니까. 기술이나 실전은 수십 년간 해 왔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이론까지 알게 되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지 않나. 2017시즌이 끝난 뒤 잠시 야구계를 떠나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 한 결정이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뭐가 그렇게 좋았나?

“일단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거의 평생을 야구만 보고 살았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각 전공에서 최선을 다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졌다. 한국체대 대학원에는 역학을 공부하는 분, 심리학을 전공하는 분, 교육학을 하는 분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내게는 좋은 스승님이었다. 대학원 다니면서 결석을 거의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공부 자체보다는 학위를 위해 대학원에 가는데.

“수업이 일주일에 두 번 있었는데 나는 학교에 4번 나갔다. 월, 화, 수, 목요일은 학교에서 살았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은 다른 전공 공부하는 사람들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 하고, 논문도 찾아보고 그랬다. 예전 학창시절 단국대에 다닐 때엔 야구부 훈련과 경기 일정 때문에 거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MT도 못 가고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지 못했다. 그 때 못 누렸던 것들을 50살이 다 돼서 한껏 즐겼다.”

서용빈 KT 위즈 코치

-대학원 생활이 올해 KT 2군 감독을 맡은 뒤 어떤 영향을 끼쳤나.

“석사, 박사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겸손’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배운 것 같다. 내 선수 생활과 코치 생활을 돌이켜 보니 스스로에겐 자만했고, 상대방에게는 배려가 부족했더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항상 더욱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생식당에서 내가 밥을 한 번 사면 그 사람들은 껌이나 캔 커피라도 하나 사서 보답했다. 그 분들 덕분에 올해 2군 감독을 맡은 뒤에서 항상 자세를 낮추고, 많이 들으려고 했다. 예전 같으면 혼낼 일도 지금은 혼내기보다는 가르치려 한다.”

-박사 과정과 현역 지도자 생활을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박사 과정은 일단 공부하는 게 훨씬 많다. 야구도 야구지만 다른 분야의 것들은 더 폭넓게 볼 기회다. 하지만 팀에 소속된 일원인 만큼 팀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내년에 비대면 수업을 한다면 구단의 허락을 얻어 조금씩 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면 휴학을 할 수밖에 없다. 조급하진 않다. 일단 박사 과정에 입학했으니 기회가 생길 때 공부를 하면 된다. 60살 안에 박사 과정을 끝내는 게 목표다.”

-박사 과정이 야구 인생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일단 모든 일을 할 때 아는 게 중요하다. 선수를 가르칠 때건, 임무를 맡았을 때건 많이 알면 알수록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선수-지도자 관계에서는 지도자자 정말 중요하다. 조직에서 리더가 중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말 한 마디, 원 포인트 레슨 하나가 한 선수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느낌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지식을 종합해서 가르치면 조금이나마 성공 확률을 높을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 KT의 한국시리즈 우승 배경에는 2군의 도움도 있었을 텐데.

“올해 KT 1군의 정규시즌 성적이 좋았다. 1군의 상황에 맞춰 2군이 준비해야 하는데 올해는 육성보다는 1군 지원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시즌 초반 황재균이 코뼈를 다쳤을 때 김병희가 빈틈을 메웠고, 박경수가 부상으로 빠졌을 땐 강민국이 잘 버텨줬다. 이강철 감독님께서 2군 코칭스태프의 의견을 잘 받아들여주셨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공부를 하려는 야구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대부분의 야구 선수들이 공부보다는 운동만 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해 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야구를 하면서 배우고 익힌 응용력이 발휘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가 있기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첫 발을 내딛게 되면 생각했던 것 이상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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