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에게 새삶 선물하고 떠난 ‘5세 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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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카페서 물에 빠져 뇌손상 소율이
투병 이어가다 심정지로 뇌사판정
지난달 28일 심장-좌우 신장 기증
“재로 바뀌기보단 누군가 살린다면…”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나면서 심장과 신장을 기증해 3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전소율 양. 2019년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누구보다 밝고 활기찬 아이였다. 전기섭 씨 제공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나면서 심장과 신장을 기증해 3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전소율 양. 2019년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누구보다 밝고 활기찬 아이였다. 전기섭 씨 제공
“소율이는 참 밝은 아이였어요. 길에서 만나는 언니 오빠들, 강아지와 나무한테까지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죠. 발레리나 영상을 보면서 곧잘 따라하길래 나중에 꼭 발레학원을 보내주려 했는데….”

3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전소율 양(5)의 아버지 전기섭 씨(43)가 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한 말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소율이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심장과 좌우 신장을 기증한 뒤 세상을 떠났다고 이날 밝혔다.

소율이는 불임 판정을 받았던 전 씨 부부에게 선물처럼 찾아왔던 아이였다. 그런데 2019년 12월 찾은 키즈카페에서 목욕탕 물에 빠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심정지가 온 소율이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심장 박동은 돌아왔지만 뇌가 크게 손상됐다. 담당 의사는 “뇌 기능의 약 90%가 사라져 앞으로 일상생활을 거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2년 동안 집에서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소율이는 지난달 22일 위에 영양을 공급하는 튜브 연결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불과 3일 앞둔 19일, 또 심정지가 발생했다. 결국 뇌사 판정을 받고 5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 전 씨가 어렵게 얻은 귀한 딸을 떠나보내며 장기기증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전 씨가 마음을 굳히게 된 건 평소 병원에서 봤던 아픈 아이들 때문이었다. 전 씨는 “딸과 함께 병원을 다니면서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픈 아이들을 많이 봤다”며 “세상에 이런 아이들도 있다는 생각에 늘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소율이가 한 줌의 재로 바뀌기보단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사실 전 씨 가족의 아픔은 처음이 아니다. 6월에는 3년 동안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소율이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 딸을 연이어 잃는 아픔에도 전 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소율이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가 건강하게 지내면 우리 소율이 심장도 뛰는 거잖아요. 우리 아이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제게는 위안이 됩니다. 이전까지는 삶의 의미가 없었는데, 이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리고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소율이가 꼭 다시 제 딸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아직 딸에게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습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전소율#장기기증#5세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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