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이냐 평점이냐’ 남 일 같지 않은 식당의 고민[2030세상/박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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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칼럼니스트
박찬용 칼럼니스트
거의 평생 서울에 살았으니 자주 가는 식당이 몇 개 있다. 가격이 과하지 않고 음식의 완성도가 가정식 수준을 넘어서며 순하든 진하든 맛의 지향점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식당이니 친구들과도 가고, 편하게 지도 앱으로 주소를 공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도 앱으로 식당 주소를 찾는 김에 그 식당의 인터넷 평점을 보게 됐다. 하나같이 평점이 높지 않았다. 5점 만점에 3점대 정도였다. 왜지? 맛이 변했나? 궁금해서 가 보았다.

내가 가던 식당들은 그대로였다. 면이 아니라 밀가루를 떼어 와 식당 제면기로 바로 면을 뽑는 칼국숫집 면발은 똑같이 신선했다. 직접 빚은 만두와 주문이 들어간 후 바로 전을 부쳐주는 식당의 음식 맛도 같았다. 엄청나게 사근사근하지 않을 뿐 챙겨줄 건 다 해주는 특유의 접객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만족했다. 모든 게 금방 바뀌는 대도시 속에서 내가 알던 경험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했다.

다시 지도 앱을 켜고 내가 좋아하는 식당의 평점을 보았다. 평점 옆 코멘트를 보니 그 식당들의 낮은 평점이 이해됐다. ‘맛없다’처럼 근거가 모자라거나 ‘태도가 별로다’처럼 감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나는 대중식당에서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 일하시는 분들이 덜 친절해지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공평하게 평점을 매기는 세상에선 단 한 사람에게만 잘못 보여도 평점이 뚝뚝 떨어지는 걸 각오해야 한다.

온라인 주문을 받는 식당에서 평점은 각오하고 말 정도를 넘어서는 절대적 지표다. 비슷한 식당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배답 앱 화면에 피자집 21개와 족발집 17개가 떠 있으면 보통 사람에게 와닿는 기준은 결국 평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배달음식을 시키면 부탁하지도 않은 서비스나 정성스러운 손편지가 온다. 좋은 평점을 달라는, 혹은 나쁜 평점은 주지 말라는 무언의 호소 같다. 감사하면서도 착잡하다. 자영업자에겐 편지 쓰는 시간도 서비스도 다 비용인데.

식당이 내는 맛은 시장의 요구를 따른다. 시장이 원하는 걸 안 주면 살아남지 못하니까. 그러다 보니 고객이 일견 모순된 요구를 해도 응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이게 뭐지?’ 싶은 음식이 나온다. 돼지고기엔 특유의 맛이 있는데 그걸 없애고 질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당류를 넣으니 족발이 점점 달콤해진다. 프랑스 과자 마카롱은 디저트니까 원래 단 건데 한국 시장은 너무 단 디저트를 찾지 않으니 마카롱은 본토 것보다 덜 달콤해진다. 그 결과 배달 족발은 너무 달고 배달 마카롱은 달지 않아 싱겁다.

식당 음식 맛과 평점 관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성공하려면 나만의 개성을 가지라고 하지만 남다른 개성은 사람들에게 외면받기도 쉽다. 살아남으려고 개성을 접다 보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된다. 개성이냐 평점이냐, 식당 음식을 넘어 지금 사회생활을 하는 나의 세대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나 역시 답을 찾지 못한 채 종종 여전한 단골집에 갈 뿐이다. “평점이 높지 않아서인지 한가해서 좋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박찬용 칼럼니스트


#2030세상#박찬용#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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