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강정훈]15년 된 ‘일해공원’ 명칭 논란 이번엔 끝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일해공원? 차라리 각하(閣下) 공원으로?’

15년 전인 2006년 가을 기자가 썼던 본보 ‘동서남북’ 제목이다. 경남 합천군이 ‘새천년 생명의 숲’을 ‘일해공원’으로 바꾸려는 것의 부당함을 지적한 글이었다. 일해(日海)는 11, 12대 대통령을 지낸 합천 출신 전두환 씨(90) 호.

광주 항쟁 단체와 진보진영이 곧바로 들고 일어났고, 반대 여론이 드셌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소속 합천군수는 이를 무시했다. 이 공원은 결국 2007년 초부터 일해공원이란 이름을 달고 지금에 이른다. 전 씨가 쓴 커다란 표지석도 있다.

예상대로 황강변의 아름다운 공원은 조용한 날이 없었다. 민주·진보진영의 철거 요구와 집회가 이어졌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의 공원 내 상영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합천군 이미지도 깎아 먹었다. 전 씨 평판이 달라졌을 리도 만무하다. 2010년 군수가 바뀐 뒤에도 명칭 변경 요구는 이어졌으나 갑론을박에 그쳤다. 전 씨 죄상에 대한 인식 차이, 보수 색채가 강한 지역정서를 업은 정치권이 막아선 탓이다.

이 문제가 올 초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국민의힘 소속 초선 문준희 군수(61)는 공론화와 여론조사를 선택했다. 최근 지역 6개 언론사의 군민 여론조사에선 명칭 변경 ‘찬성’이 40.1%, 변경 ‘반대’ 49.6%로 나왔다. 한 언론사의 직전 조사와는 반대 결과였다. 이를 두고 다시 논쟁이 시작됐다. “그냥 두라는 것이 군민 뜻이다” “40% 이상이 요구하므로 바꿔야 한다”는 등 백가쟁명이다.

합천군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 군수는 15일 “의견을 두루 들은 뒤 군의회와 간담회를 거쳐 내년 초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무소속 배몽희 합천군의회 의장은 “군민 40%가 불편해하는 이름이라면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밝혔다. 배 의장 뜻은 그렇지만 합천군의회는 국민의힘이 다수다. 그래서 예측은 어렵다. 또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민국만큼 돌에다 이름, 공적 새기기를 좋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경남도청 넓은 정원엔 표지석 수십 개가 놓여 있다. 정부 관료와 도지사, 도의회 의장 등이 예산으로 나무를 심고 돌을 박아 둔 것이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취임 기념식수엔 표지석이 두 개다. 진보단체 등이 훼손하려던 그의 ‘채무제로’ 표지석을 갖다 두면서 우스꽝스런 모양이 됐다.

‘대장부 이름은 사관(史官)이 책에 기록해 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지, 돌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날아다니는 새 그림자만도 못하다.’ 합천이 낳은 조선 영남학파 거유(巨儒)이자 ‘칼을 찬 선비’ 남명 조식 선생의 천금같은 가르침이다. 뿐인가. 신라 충신 죽죽, 왕사를 지낸 무학대사, 의병장 내암 정인홍…. 합천 인물은 수두룩하다. 그 영예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대서야 어찌 후손이라 자부할 수 있는가.

교사, 도의원을 거친 문 군수는 역대 합천군수 중 젊은 편이다. 생각도 비교적 균형 잡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그가 귀를 열고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간이다. 표로 먹고 사는 운명이라지만 오직 군민과 국민, 그리고 역사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에 집중해 결단하면 된다.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
#합천군#일해공원#새천년 생명의숲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